[가슴 훈훈한 추석특집 드라마 3편]

  • 입력 1997년 9월 13일 08시 22분


《길이 막힌들 어떠랴. 고향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간다. 맨발로 달려나와 맞아줄 가족들, 정다운 이웃들이 있기에. 올 추석 TV 3사는 사람사는 정에 듬뿍 빠질 수 있는 특집 드라마를 한 상 가득 차려냈다. 공통된 주제어는 휴머니즘이다. 때로는 기쁨보다 고통이 더 깊게 다가오는 삶. 등이 휠 것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가족의 굴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바로 그 가족들의 끈끈함이며, 그래서 산다는 건 하나의 축복임을 속삭이듯 일깨워 주는 드라마들이다.》 ▼SBS「약속」 SBS 「약속」(15일 밤 9.30)은 고향집 황토마당 장독대 우물같은 낯익은 풍경을 배경으로 부모세대의 홀로서기를 그리고 있다. 전직 중학교장인 평하(신구 분)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젖어 있는 고집불통 노인. 이승의 삶이 끝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아내(반효정)는 『손자는 귀여워만 하지 가르칠 생각은 하지 말아라』 『속내의 정도는 직접 빨아 입어라』 등 「자식에 얹혀살 홀노인의 몸가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이제 자식들로부터의 소외감과 홀로된 외로움에 시달리던 평하의 갈등이 비칠 차례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석가여래 공덕받고 어머님전 살을 빌고 아버님전 뼈를 받고… 열달 만삭을 고이 채워 이내 육신이 탄생을 하니…」 드라마의 주제음악처럼 쓰이는 「회심곡」의 한 구절이다. 부모의 은공을 외면해서는 안되지만 어차피 사람은 내리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가족을 울타리 삼아 스스로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우리시대의 효 해법」을 조심스레 내비치고 있다. 박완서씨의 단편 「오동의 숨은 소리여」를 바탕으로 선굵은 드라마 「형제의 강」을 연출한 장형일PD가 만들었다. ▼KBS1「불 붙은 난간」 16일 방영되는 KBS 1TV 「불 붙는 난간」(밤 9.50)은 고향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고향 회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짚어주는 드라마.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몰락해가는 한 가문의 이야기가 표면에 등장한다. 고향을 등지고 떠난 인물들과 마지막까지 고향의 무게를 지고 조상이 남긴 정신적인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대립된다. 정 준(이순재)은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정치판에 나선 뒤 가문도 기울고 자신도 몰락했다. 고목처럼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이에 비해 그의 아들 신욱(조재현)은 고향과 만날 수 없는 인물들을 상징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유희(송채환)가 있어 고향을 잃고 상처입은 이들 모두를 포근히 감싸 안는다. 우리 고향에, 우리 가족속에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힘이 있음을 말해주는 셈이다.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인 이균영의 원작을 연출가 이성주PD가 다듬어냈다. ▼MBC「누리야 누리야 뭐하니」 MBC의 「누리야 누리야 뭐하니」(17일 오전 10.00)는 한국판 「엄마찾아 삼만리」. 소설가 양귀자씨가 쓴 같은 이름의 동화가 원작으로 김정호PD가 연출했다. 구슬치기를 잘하는 열살난 누리(이정윤)는 속깊은 아이다. 아버지를 잃고 소식도 없이 어머니도 사라졌지만 무서운 밤도 혼자서 잘 견뎌낸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은 누리를 천사원에 보내려 하고, 이를 알게 된 누리는 서둘러 엄마찾아 서울길을 나선다. 나쁜 어른들도 만나지만 그래도 세상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임을 깨닫게 되고…. 「아이와 함께 있으면 영혼이 치료된다」고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떠오르는 드라마다. 〈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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