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통상 정책의 불확실성 탓에 한국 증시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했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최근 글로벌 주요 증시 중 가장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정보기술(IT)·자동차·배터리 등에 영향을 줄 미국의 관세 정책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악재들이 주가에 선반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부활시키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관세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이지 최종 목적이 아닐 확률이 높다. 미국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을 경계해야 하지만 막연하게 비관할 필요도 없다.
한국의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첨단 반도체의 경우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다면,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 빅테크 업체들의 수익성도 나빠질 것이다. 보편 관세가 현실화된다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재점화될 수 있다. 이로 인한 주식 시장의 하락과 변동성 확대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도 원치 않는 그림일 것이다.
최근 한국 증시에서는 조선·방산·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 이들은 미국의 부족한 산업을 보완할 수 있거나, 통상 정책 우려와 무관한 섹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시가총액 순위를 살펴보면 이런 변화가 확연히 감지된다.
통상 우려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지난해 미국 하원이 결의한 바이오 보안법의 수혜가 기대되는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 상승도 눈에 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7일 처음으로 시총 80조 원을 돌파한 뒤 LG에너지솔루션과 시총 3위 경쟁을 하고 있다. 지난해 코스닥 시총 1위로 등극한 알테오젠은 지난해 머크와의 기술 계약이 독점으로 바뀐 뒤 200% 넘게 상승했다.
가장 명확한 수혜 업종인 조선 업종의 강세도 계속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유가증권시장 시총 순위 30위 밖이던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시총은 20조 원을 넘기며 10위권대에 진입했다. 조선 산업이 주력인 HD현대그룹의 시총은 2023년 말(34조6000억 원)과 비교했을 때 지난해 말 70조5000억 원(지난해 신규 상장한 HD현대마린솔루션 제외)으로 두 배가 됐다. 방산과 조선 산업 비중이 높은 한화그룹의 최근 시총은 2023년 말과 비교했을 때 약 2.2배 상승했다. 미 상원에서 동맹국에서 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군함 제조에 특화된 한화오션의 주가가 연일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시총의 변화는 그 시대를 주도하는 산업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2023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수혜에 따른 배터리 랠리, 지난해 인공지능(AI) 사이클에 이어 올해는 미국 정책 수혜 업종인 조선과 방산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은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인 만큼 교역 상대국의 정책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시장 주도 업종 변화의 이유를 이해하고, 경쟁 우위를 확보한 기업을 선택한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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