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혁신 기업인가… 10년 넘게 끝나지 않는 논쟁[B결노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3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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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革新
명사.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
쿠팡은 2010년 8월 창립됐다. 창립 이후 지금껏 이어지는 논쟁이 있다. 바로 쿠팡이 ‘혁신기업’인가 하는 점이다.

쿠팡을 말할 때 항상 비교되는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의 유통 플랫폼 ‘아마존’. 쿠팡이 혁신 기업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마존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은 게 어떻게 혁신이냐”라고 말한다. 반대편에선 “아마존이 걸었던 길을 걷는 게 쉬웠다면 지금까지 한국의 유통 대기업은 그걸 왜 안했냐”라고 되묻는다.

쿠팡은 어디까지 아마존을 닮아 있을까. 아마존과 다른 쿠팡의 혁신성은 무엇일까. B결노트 2편에서는 혁신기업으로서의 쿠팡을 평가했다.

쿠팡은 아마존을 따라하는가?… 현재까진 “그렇다”
연도별로 따져 본 아마존과 쿠팡의 사업 확장 과정.
연도별로 따져 본 아마존과 쿠팡의 사업 확장 과정.


위의 표부터 보자. 아마존과 쿠팡이 창립부터 주요 사업을 시작한 시기를 비교했다.

아마존은 1994년 설립 이후 11년 만인 2005년 멤버십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을 도입했다. 설립 12년 만에 OTT서비스인 프라임 비디오를 내놨다. 이후에 물류대행 서비스도 나왔다.
쿠팡은 2010년 설립 이후 9년 만인 2019년 멤버십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을 도입했다. 설립 10년 만인 2020년 OTT서비스인 쿠팡플레이를 내놨다. 이후에 물류대행 서비스도 나왔다.

두 기업은 주요 사업을 도입한 순서는 물론, 도입까지 걸린 시간도 비슷하다. 앞서 간 아마존의 길을 쿠팡이 그대로 밟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주된 이유다.

두 회사의 핵심 서비스인 유료 멤버십를 비교해 보자. 2005년 아마존은 당시로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멤버십 아마존 프라임을 론칭했다. 연회비 99달러를 내면 무료 2일 이내 배송(일부 지역은 2시간 배송), 무료 반품, 무료 전자책 약 100만 권, 음악 스트리밍 약 200만 곡, 영화 및 드라마 약 4만 편 등의 혜택을 줬다. 월 구독료를 14.99 달러로 조정한 지금은 무료 게임과 무제한 용량의 사진 저장소, 구매 전 의류 피팅 서비스 등을 추가 제공한다.

쿠팡과 아마존의 물류 시스템. 쿠팡, amazon 제공
쿠팡과 아마존의 물류 시스템. 쿠팡, amazon 제공
아마존에게 프라임이 있다면 쿠팡에겐 ‘와우’가 있다. 쿠팡은 2019년 당시 월 2900원에 무료 로켓배송과 무료 반품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와우 멤버십을 선보였다. 쿠팡에 따르면 와우 론칭 후 약 2년 만에 무료배송 주문만 10억 건 이상 처리했다. 2021년 12월, 와우 이용료를 월 4900원으로 인상했지만 그만큼 혜택도 늘렸다. 전날에 주문한 신선식품을 다음날 새벽에 받아보는 로켓프레시와 로켓직구 무료 배송, OTT 쿠팡플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와우 회원에게 쿠팡이츠 주문에 대한 10%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화면. amazon 제공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화면. amazon 제공
두 유통 공룡은 OTT 시장에 진입한 이유도, 진입한 방식도 비슷하다. 진입 이유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제공해 멤버십 고객의 이탈을 막는 것, 진입 방식은 거대 자본 투입으로 기존 지배적 사업자에게 도전하는 방식이다.

아마존은 “프라임 비디오의 작품이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면 우리는 더 많은 신발을 팔 수 있다”는 제프 베조스 창업자의 말처럼 멤버십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콘텐츠를 적극 활용했다. 2010년 자체 제작사 ‘아마존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2021년 할리우드 영화사 MGM을 84억 5000만 달러(약 9조 3888억 원)에 인수하며 경쟁자가 따라오기 힘든 자본 투입에 나섰다.

쿠팡플레이는 스포츠 경기 중계에 집중하며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쿠팡 제공
쿠팡플레이는 스포츠 경기 중계에 집중하며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쿠팡 제공
쿠팡의 OTT 진출기는 어땠을까? 2020년 ‘쿠팡플레이’를 출시하며 국내 OTT 시장의 후발주자로 진입했다. 와우 멤버십 이용 고객에게 무료 제공한 플랫폼으로, 경쟁사들 대비 오리지널 시리즈가 적어 처음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팡플레이는 9월 월간활성이용자 수에서 티빙과 웨이브를 제치고 넷플릭스에 이은 국내 2위(531만 7417명) OTT가 됐다.

대중의 선호도가 높을 만한 콘텐츠에 집중 투자한 것이 묘수였다. 일례로 제작사 에이스토리와 독점 서비스 계약을 맺고 방영한 SNL코리아는 각종 숏폼을 양산하며 쿠팡플레이의 인기를 견인했다. 스포츠 경기 중계로 얻은 효과도 상당하다.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프로축구 구단 토트넘과 맨시티의 잉글랜드 리그컵 최종 결승전을 생중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해외파 한국 선수들의 활약을 볼 수 있는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와 덴마크 수페르리가, 그리고 포뮬러원(F1)의 경기로 중계 범위를 넓혔다.

벤치마킹 잘하는 것도 혁신인가?… 학계에선 “그렇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혁신은 ‘가치 제고’다. 생산이든 소비든 기존의 가치를 올리면 혁신이다. 학자들은 아마존과 유사한 행보를 밟고 있는 쿠팡을 혁신 기업으로 보고 있을까?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쿠팡은 아마존의 사업 모델과 닮았지만, 한국 시장에 맞춰 변주를 줬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혁신성의 2가지 축인 새로움과 상업화의 개념을 내놨다. 기업의 혁신이란 새로운 시도가 성공적으로 상업화된 것을 의미하는데, 쿠팡은 아마존이 한국과 지리적·문화적으로 상이한 미국에서 성공시킨 모델을 한국 시장에 맞춰 상업화시켰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온라인 판매 모델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만약 쿠팡이 현지화 없이 아마존의 모델을 그대로 카피했다면 성공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의 기술 및 경제 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는 쿠팡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에서 ‘2020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2위로 꼽았다.

쿠팡 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혁신기업 논쟁과 관련해 쿠팡 측이 B결노트 취재진에 보내 온 입장을 그대로 게시한다.

“쿠팡은 고객이 앱을 여는 순간부터 주문이 집으로 배달되는 순간까지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표로 십여 년간 수조 원을 투자해 전국을 잇는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고, 주문 후 단 몇 시간만에 배송되는 로켓배송, 새벽배송, 손쉬운 반품서비스 등 전에 없는 서비스로 고객경험을 혁신해 왔습니다. 이 같은 서비스들은 아마존에는 없는 쿠팡이 고객들을 위해 만든 독보적인 서비스이며, 쿠팡이 혁신 없이 아마존의 성공 모델을 따라한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주장입니다.”

쿠팡의 물류 서비스 모습. 쿠팡 제공
쿠팡의 물류 서비스 모습. 쿠팡 제공
그렇다면 현재까지 쿠팡이 외부에서 볼 때 ‘아마존 워너비’로 비칠 정도로 아마존과 비슷한 경로를 밟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이준만 교수의 설명이다.

“아직 아마존과 완전히 다른 사업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아마존 모델을 한국 시장에 맞춰 현지화하는 것이 쿠팡 입장에선 효율적이고 실패 확률이 낮은 ‘쿠팡만의 혁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유통 1위 유력한 쿠팡, 앞으로 필요한 행보는
쿠팡이 아마존 수준의 혁신을 이뤄내려면 기존 경쟁자가 진출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마존은 기업의 IT 환경을 공략한 ‘AWS(Amazon Web Service)’로 전례 없는 사업 영역을 창출했다. 2000년대 초반 의류와 스포츠 및 건강 용품으로 판매 상품군을 넓혀가던 아마존은 2006년 클라우드 사업에 관심을 보였고, 그 결과 고객사에게 저장 공간·네트워크·서버 등을 제공하는 솔루션 AWS를 출시했다. 이는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사업 규모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컴퓨팅 리소스를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다.

실제 AWS는 넷플릭스, 드롭박스, 애플 아이클라우드 등 유명 고객사들을 확보하며 급성장했다. 일례로 넷플릭스는 AWS 시스템 하에서 수많은 콘텐츠를 저장하고 작품 추천 기능 등을 선보인 바 있다.

아마존의 신 사업영역이 된 AWS. amazon 제공
아마존의 신 사업영역이 된 AWS. amazon 제공
AWS는 이제 아마존의 핵심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달 26일(현지시간) 발표된 올해 3분기(7~9월) 아마존 실적을 보면 AWS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 성장한 230억600만 달러에 달했다. 앞서 2분기(4~6월)에도 AWS 매출은 당시 아마존 전체 매출의 약 70%에 달하는 221억 달러(약 30조 원)로 집계됐다. OTT, 음식배달 등 기존에 존재하는 산업군 내에서만 확장을 해 온 쿠팡과 달리, 아마존은 AWS로 새로운 산업을 만든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쿠팡으로서는 이 부분을 반드시 눈여겨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한규 기자 hanq@donga.com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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