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한국 배터리 산업, 품질과 규모로 격차 벌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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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나르스키 S&P 애널리스트
“한국은 진정한 배터리의 나라”
치열해진 패권 전쟁서 이기려면
재활용 산업에도 관심 가져야

테슬라의 첫 전기차 로드스터가 빨간 몸체를 뽐내며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101호선 고속도로를 질주한 지 1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 자동차로 넘어왔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 10대 중 한 대는 순수 전기차일 정도다. 모건스탠리는 2030년이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순수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31%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전기차 보급 확대는 배터리 시장의 급성장을 야기하고 있다. 그 결과, 배터리 시장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새로운 글로벌 격전지로 떠오른 배터리 시장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6월 2호(371호)에 게재된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S&P글로벌 수석 애널리스트(사진)와의 e메일 인터뷰를 요약해 소개한다.

베드나르스키 수석 애널리스트는 리튬 및 배터리 메탈 시장 분석 전문가로 저서 ‘배터리 전쟁’을 펴내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 150개국, 1만5000개 이상의 기관과 기업이 그의 시장 분석을 바탕으로 경영 계획과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의 규모와 전망은 어떤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원유의 약 79%가 자동차와 비행기, 선박의 연료로 쓰이는데 지금 기술로도 배터리가 석유 수요의 50%를 대체할 수 있다. 최신형 전기자동차는 단 한 번의 충전으로 500km 이상을 주행할 수 있고, 충전에 걸리는 시간도 급격히 단축되고 있다. 업계에 정통한 이들 대부분이 더는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수 있을지 묻지 않는다. 그 대신 대체하는 시점이 언제가 될 것 같냐고 묻는다. 배터리 산업은 석유 산업이나 반도체 산업에 비하면 아직 작은 규모지만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수요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30배 이상 증가했고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배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배터리 산업의 메이저 플레이어는 누구이며 그들이 앞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이 진정한 ‘배터리의 나라’다. 배터리를 발명하지는 않았지만 상용화 수준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일본의 덕목으로 유명한 ‘품질’과 중국의 ‘규모’를 동시에 구현했다. 특히 양극재에 매우 강한데, 이는 다른 부품들의 경쟁력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다른 나라의 기업들이 원가 절감 원칙을 밀어붙이던 코로나19 팬데믹 암흑기에도 생산량을 늘리고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며 전기화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또 다른 국가와 전략을 꼽자면….

“중국 역시 배터리 시장 강자다. 중국은 신에너지 혁명을 통해 외국 회사와의 합작을 통한 노하우 이전, 정부의 보조금 지원 등 그동안 다른 산업을 키우며 효과가 입증된 방식을 통해 배터리 산업을 발전시켰다. 정부가 주도하는 강력한 산업 육성책에 힘입어 CATL과 비야디(比亞迪, BYD) 같은 강력하고 큰 배터리 회사가 탄생했고,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여러 생산업체가 있다. 특히 일부 중국 기업은 수직 계열화를 통해 전기차 산업과의 연계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리튬과 기타 핵심 자원들을 채굴하고, 화학물질로 가공하며, 부품으로 만들고, 자국 내에서 생산된 배터리에 설치하는 모든 단계가 중국 국경선을 넘지 않고 이뤄지는 것이다. 실제 비야디는 리튬 채굴부터 자동차 생산까지 사업을 다각화한 끝에 지난해 테슬라를 제치고 전기차 판매량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앞으로 배터리 산업에서 주도적인 플레이어가 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병목 현상과 공급 부족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가 나오는 것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복잡하기까지 한 공급망을 가진 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다만 주목할 만한 몇 가지 흐름이 있다. 배터리 원료 정제 산업의 발전, 아프리카 등 새로운 리튬 광산 개발, 마지막으로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 등이 그것이다. 전기차 외에 다른 전기 모빌리티로 눈을 돌려볼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인 이비에이션은 배터리를 이용하는 전기 여객기를 만든다. 지난해 이비에이션이 설계하고 제작한 9인승 여객기 ‘앨리스’는 첫 시험 비행에 성공했는데 한국의 배터리 기업 코캄이 여기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다. 배터리 재활용 산업도 새로운 기회다. 지금 달리고 있는 전기차용 배터리의 수명이 평균 15년 정도라고 치면 2030년부터는 폐배터리가 폭발적으로 쌓여갈 것이다. 한정된 자원과 환경 문제를 고려하면 배터리 재활용은 당연한 수순이다. 차세대 배터리 개발도 계속되고 있다. ‘꿈의 배터리’라고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이 액체 상태인 리튬 이온 배터리와 달리 전해질이 고체인 데다 인화성 물질이 포함되지 않아 충격을 받더라도 발화할 가능성이 낮아 안전하다. ”

―한국의 배터리 산업에 특히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 삼성SDI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배터리 회사들이다. 여전히 과감한 투자와 품질 개발에 나서고 있는 만큼 당분간 이런 위상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본다.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배터리 업계에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미국이 강력한 무기를 꺼내 들면서 그간 중국을 중심으로 흘러온 글로벌 배터리 산업의 지형도에 큰 변화가 예고된 것이다. IRA에 따르면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유럽연합(EU) 모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아 최혜국 대우를 받지 못하지만 운이 좋게도 한국은 미국과 FTA를 맺고 있어 법안의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서 나간다면 배터리는 반도체에 이어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먹거리가 될 것이다.”

신민기 DBR 객원기자 minkimomo1215@gmail.com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한국 배터리 산업#품질과 규모로 격차 벌려야#베드나르스키#재활용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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