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참치 캔 연구하다 배터리 캔 시장 진출… 신사업 확장 ‘체인 이노베이션’ 전략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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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 본업서 ‘혁신의 고리’ 찾아
이차전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인수합병은 퍼즐 조각 찾기처럼
인수 후 포용, 통합적 조직 문화 구축

“순항할 때 다음 어장을 준비하라.”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이다. 바다를 누비며 참치를 잡던 김 명예회장이 1969년 세운 동원은 현재 이차전지 소재, 스마트 항만, 연어 양식 시장을 항해한다.

동원참치 통조림은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며 41년간 독보적 1위 자리를 차지해온 캔참치의 대명사다. 그러나 해외 어장의 감소로 원양 산업 규모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드는 등 경영 환경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이에 동원은 김 명예회장의 철학에 따라 지난 50년간 신사업을 키워나갔다. 1차 산업인 수산업에서 시작해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업으로 끊임없이 업(業)을 확장한 결과, 첨단소재와 물류 등으로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다. 지난해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창사 이래 최대 매출(9조263억 원)을 달성한 배경이다.

동원이 1차, 2차, 3차 산업을 망라한 신사업을 성공적으로 육성해낸 배경에는 ‘체인 이노베이션(Chain Innovation)’ 전략이 있다. 본업을 파고들어 혁신의 고리를 발견하고 이를 미래 신사업과 연결 짓는 것이 핵심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6월 2호(371호)에 실린 동원의 체인 이노베이션 전략을 요약해 소개한다.

● 본업에서 차별화 열쇠 찾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원시스템즈는 참치 캔, 과자 포장재 등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런데 현재 동원시스템즈에는 이차전지 연구개발센터가 있다. 연구원 40여 명이 이차전지 소재 테스트, 제품 개발, 시제품 생산을 맡고 있다. 어떻게 포장재 회사가 첨단 소재 전문 기업으로 혁신했을까.

동원은 참치, 양반김 등의 포장을 자체 생산하기 위해 1991년 포장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6년 다국적 식품 기업 네슬레와 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등 포장 사업은 나날이 성장했다.

신사업에 대한 고민은 사업이 안정화됨과 동시에 시작됐다. 동원은 ‘알루미늄’에 주목했다. 간편 조리식, 펫 푸드 시장이 커지면 포장재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2010년부터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LG전자, 삼성SDI 등도 이차전지 사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알루미늄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동원은 2012년 대한은박지를 인수해 알루미늄박 가공 기술을 확보했고, 포장재를 만들며 쌓아 온 코팅 기술을 적용해 차별화에 성공했다. 2016년 첫선을 보인 동원의 ‘카본 코팅’ 알루미늄박이 들어간 이차전지는 애플, 페라리에 납품된다. 초고강도 알루미늄박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알루미늄박을 사용하면 배터리 용량이 늘어날 때 생기는 균열을 방지할 수 있어 고용량 배터리가 필수인 전기차에 적격이다.

동원은 2021년 원통형 배터리 캔 생산 업체 엠케이씨를 인수하며 배터리 캔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는 배터리 캔 제조 기술에 
레토르트 파우치를 만들던 기술을 접목해 이차전지용 셀 파우치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동원시스템즈의 이차전지 공장인 경북 
칠곡사업장에서 21700규격(지름 21mm, 높이 70mm) 원통형 배터리 캔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 동원시스템즈 제공
동원은 2021년 원통형 배터리 캔 생산 업체 엠케이씨를 인수하며 배터리 캔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는 배터리 캔 제조 기술에 레토르트 파우치를 만들던 기술을 접목해 이차전지용 셀 파우치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동원시스템즈의 이차전지 공장인 경북 칠곡사업장에서 21700규격(지름 21mm, 높이 70mm) 원통형 배터리 캔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 동원시스템즈 제공
2021년에는 원통형 배터리 캔 전문 업체 엠케이씨를 인수해 참치 캔 제작 기술과 배터리 캔 생산 공정을 접목했다. 현재는 에너지 보관 밀도가 크고 제품 모양에 따라 맞춤 디자인이 가능한 이차전지용 셀 파우치를 개발하고 있다. 조점근 동원시스템즈 이차전지 부문 대표이사는 “셀 파우치 필름 시장은 현재 일본 회사가 독점하고 있지만 2030년까지 이차전지 사업 매출을 1조4000억 원까지 끌어올려 게임 체인저가 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 시너지 극대화하는 인수합병
동원이 새로운 분야에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던 무기는 인수합병이었다. 1982년 한신증권 인수에 이어 2005년에는 한국투자증권까지 인수하면서 금융업계에 진출했다. 또 2006년에는 유제품 사업의 발판이 된 해태유업을, 2008년에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미국 최대 참치 기업 스타키스트를 잇달아 인수했다. 최근 20년간 동원그룹이 인수합병한 기업만 20여 개에 이른다.

동원의 인수합병 기본 원칙은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 간 사업 분야가 겹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업 분야가 겹치지 않으면서도 현재 사업과 시너지가 나야 한다. 최종 결정은 오너이자 최대 주주인 김 명예회장과 김남정 부회장의 몫이지만 후보군을 물색하고 협상을 진행하는 일은 지주회사와 전문경영인이 맡는다. 전문경영인은 이 기업을 왜 인수해야 하는지, 가격은 적절한지 등 끝없는 ‘질문의 고개’를 넘으며 철저하게 준비한다.

국내 최대 포장재 기업인 테크팩솔루션 인수가 모범 사례다. 동원시스템즈도 포장재 사업을 하지만 테크팩솔루션과는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았다. 동원은 2014년 테크팩솔루션을 인수했고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이라 불리는 무균 충전 음료 사업에 진출했다.

● 혁신은 조직문화로 완성된다
2008년 스타키스트 인수 당시 김 명예회장은 남태평양에 있는 사모아 공장을 찾았다. 1960년 준공된 이 공장에 참치를 납품했던 주역이 당시 ‘캡틴 킴’으로 불렸던 김 명예회장이었다. 그는 미국 본사와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수년간 적자를 내는 등 경영난에 허덕였던 스타키스트는 동원이 인수한 지 반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동원은 기업을 인수하는 즉시 전사적으로 경영 관리 시스템을 통합하고 피인수기업 직원에 대한 교육에 나선다. 동원의 문화를 설명하고 소속감을 심어주는 이른바 ‘그로스 투게더(Growth Together)’ 교육이다. 박문서 동원산업 지주부문 대표는 “인수합병은 결국 수백, 수천 명의 직원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작업”이라며 인수 후 통합된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염희진 DBR 객원기자 salthj@gmail.com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동원그룹#체인 이노베이션#인수합병#혁신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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