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넘어 ‘보행로봇’… 현대車, 통큰 1조 베팅 왜?

서형석 기자 입력 2020-11-21 03:00수정 2020-11-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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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잇따라 뛰어드는 ‘미래 로봇’
세계 최고 보행로봇 기술 가진 美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러브콜
현대車, 사내 로봇연구팀 발족 등
“보행서 항공까지 모빌리티 구현”
《 로봇이 인간의 삶 속으로 성큼 다가섰다. 산업 현장과 가정을 넘나들며 쓰임새가 커지면서 대기업들도 로봇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선호는 로봇시장을 더욱 빠르게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

현대자동차 직원이 무릎을 앞으로 굽혀도 의자에 앉은 것처럼 편한 자세로 있을 수 있게 하는 웨어러블 로봇 ’H-CEX’를 착용한 채 차량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차가 개발한 H-CEX와 같은 웨어러블 로봇은 산업 현장에서 제조 및 물류 과정에 널리 쓰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로봇.’

이 단어에 대해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떠올린다. 위기에 빠졌을 때 어디선가 나타나 강력한 힘으로 적을 물리치는 ‘로보트 태권V’를 생각하기도 하고, 2112년 미래에서 날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 귀여운 파란 고양이 ‘도라에몽’을 기억할 수도 있다. 때로는 인간의 친구이자 동료가 되지만, 때로는 과잉된 인공지능(AI)으로 인류 문명을 무너뜨리려 폭주하는 ‘터미네이터’일 수도 있다. 얼마 전까지 상상 속의 존재였던 이들은 어느새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집안을 스스로 청소하는 로봇청소기 수만 세어도 이미 지구촌은 사람과 로봇의 공존시대다.

○ 보행로봇에 꽂힌 현대차의 ‘1조 베팅’
최근 현대자동차가 미국의 로봇회사를 인수하려 한다는 소식이 큰 화제가 됐다. 현대차가 제시했다는 인수가격만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다. 현대차가 연결기준으로 올해 1∼9월 거둬들인 영업이익 1조1402억 원과 맞먹는다. 이 회사는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1992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레그랩(leg lab)에서 분사하면서 창업했다. 레그랩이라는 단어의 뜻 ‘다리 연구소’에 걸맞게 보행로봇을 주력으로 연구한다. 여러 해외 기술전시회, 과학도서 등에서 네 발로 걷고 뛰며, 계단도 오르내리는 ‘로봇개’를 본 기억이 있다면 십중팔구 이 회사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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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사정에 정통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 정도의 거래라면 최고경영진, 즉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그만큼 정 회장이 로봇을 통해 모빌리티 사회를 구현하는 그룹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자동차, 철도차량 등 ‘바퀴’에 집중해온 현대차가 보행로봇을 품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선보인 4족 보행이 가능한 로봇개 ‘스폿’ (왼쪽 사진)과 2족 보행 로봇 ‘아틀라스’. 동아일보DB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2013년 구글에 인수됐다가, 2017년 일본 소프트뱅크로 주인이 바뀌었다. 구글 산하에서는 구글 내 다른 업체들과의 협업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프트뱅크에서는 모기업의 로봇사업 경험, 폭넓은 통신 및 AI 사업역량과 결합해 지속적인 협업을 추진해왔다.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는 서비스 로봇 ‘페퍼’로 성공한 경험이 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직접 사업을 챙겼다.

업계는 현대차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가 실현되면 현대차의 모빌리티 꿈 ‘보행에서 항공까지’가 완성될 수 있다고 본다. ‘이동성’으로 정의되는 모빌리티는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의 이동에 효율과 편의성을 높이는 건 모두 해당한다. 현대차는 기본적으로 ‘이동’을 연구하고 파는 회사다. 걷고 뛰는 모습이 사람과 같은 ‘펫맨’ ‘아틀라스’까지 최고의 보행로봇 기술을 선보였던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차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 로봇회사가 되고 있는 車 기업들
자동차회사의 로봇사업은 확산하고 있다. 이전부터 자동차와 로봇은 뗄 수 없었다. 자동차 제조공정이 자동화하면서 작업자들이 로봇의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들의 로봇연구도 자동차 생산의 효율 향상을 고민하는 데서 시작했다. 무거운 부품을 반복해 들고 옮겨야 하는 작업자들의 안전을 지키고, 조립 속도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 회사들이 ‘웨어러블 로봇’에 먼저 주목한 이유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사내에 로봇 분야를 연구하는 팀 ‘현대·기아차 로보틱스랩’을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신사업 개척을 위해 기존 조직 내에서 작은 시범 프로젝트로 조금씩 간 보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조직을 갖추고 인재도 모았다. 사람이 직접 착용하는 웨어러블 로봇, 서비스 로봇, 이동수단으로 쓸 수 있는 마이크로 모빌리티 로봇 등 3대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로보틱스랩을 이끄는 현동진 실장은 “이동 약자들의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까지 고려해 고객의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미국 포드는 2017년 5월 자동차 조립 공정에 웨어러블 로봇을 도입했다. 작업자들은 로봇 ‘엑소베스트’를 입고 일을 한다. 엑소베스트를 입으면 굳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7kg을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다. 효과를 확인한 포드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루마니아, 중국, 태국 등 7개국 15개 공장으로 엑소베스트 보급을 확대 중이다.

독일 아우디는 2015년 스위스 스타트업 누니의 웨어러블 로봇 ‘체어리스 체어’의 현장 시험을 마쳤다. 체어리스 체어를 입은 작업자들은 엉거주춤 무릎을 굽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의자에 앉아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의자가 없어도 힘들이지 않고 굽힐 수 있고, 언제든 서서 걸을 수 있으니 작업자의 행동범위를 넓힐 수 있다. 미국 피아트크라이슬러(FCA) 역시 자동차 생산 과정에 활용할 웨어러블 로봇을 준비 중이다. 현 실장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산업현장에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산업용 착용로봇 수요가 늘고 있다”며 “자동차업계는 물론이고 농업, 서비스업 등에서도 구매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웨어러블 로봇처럼 산업현장에 도움이 되는 로봇 시장은 커지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은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로봇 시장이 매년 14%씩 커지고, 자동차산업의 산업용 로봇 수요가 전체의 33%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BIS리서치는 웨어러블 로봇 시장의 규모가 2017년 1547억 원에서 2026년 최소 5조6000억 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 산업의 진화는 로봇시장 확대에 ‘기회’
IFR는 로봇 종류를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으로 나눈다. 산업용 로봇은 웨어러블 로봇처럼 산업의 제조현장에서 생산 과정에 활용된다. 서비스 로봇은 가정과 산업현장에서 청소를 하고, 짐을 옮기거나 길안내, 식당에서의 서빙 등 사람의 일손을 덜어주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산업용 로봇은 독일과 일본, 중국 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고, 서비스 로봇도 여러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의 로봇을 내놓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로봇청소기도 서비스 로봇 중 하나다.

한국 기업들은 산업용 로봇 분야에 오래전부터 집중해오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그룹의 로봇 전문 계열사인 현대로보틱스가 지난해 실적 기준 세계 6위로 국내 시장에서 가장 앞서고 있고, 현대차의 현대위아와 두산의 두산로보틱스도 협동로봇을 중심으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협동로봇은 산업현장에서 작업자와 함께 마치 한 팀을 이루듯 공정에 참여한다. 물건을 집어서 날라 옮기는 로봇들을 동료라고 여기면 이해하기 쉽다.

산업용 로봇 시장은 전망이 밝다. 로봇의 기구부(로봇의 몸체, 로봇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부분)와 제어부(기구부를 제어 및 통제하는 부분) 기술 확보가 핵심인데 제어부는 소수의 기업만이 기술을 가진 진입 문턱이 높은 시장이다. 공장 자동화, 인구 감소는 물론이고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로봇으로의 인력 대체도 속도를 내고 있다. 디스플레이산업 중심이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바뀌고, 자동차산업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설비구축, 운반 등에 필요한 로봇 수요도 늘고 있다. 올해 3월 일본 후지경제는 지난해 1조174억 엔(약 10조9180억 원)이었던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 규모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16%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위 5개국(중국 독일 미국 일본 한국)이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 코로나19로 일상 속 들어오는 로봇
왼쪽부터 삼성전자의 ‘삼성봇 셰프’, LG전자의 ‘클로이 서브봇’. 동아일보DB
앞으로 서비스 로봇 시장은 급속도로 커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IFR는 지난해 112억 달러(약 12조4992억 원)였던 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가 2012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25%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서비스 로봇으로 분류되는 물류 자동화용 로봇이 연평균 42% 커지며 75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코로나19는 전자상거래 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물류로봇 수요를 늘리는 계기가 됐다. 미국 아마존이 이미 미국과 일본의 물류센터에서 자율주행 로봇을 배송 작업에 쓰고 있고, 국내에서도 LG전자가 올해 8월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에서 실외배송로봇을 선보이며 그동안 실내에서만 쓰이던 로봇의 활동범위를 실외로 넓히는 등 시장 개척이 활발하다. 2018년 11월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로봇사업센터’를 꾸린 LG전자는 지금까지 안내로봇, 가정용 로봇, 셰프봇(요리 조리), 서브봇(서빙) 등을 선보였다.

‘비대면 경제’를 일으킨 코로나19를 계기로 로봇의 활용도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로봇업체 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ATR)는 10일부터 오사카에서 로봇을 이용한 매장 내 코로나19 예방 실증실험을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고객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다든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충분한 인원에게 서로 떨어져 있을 것을 권유한다. 1999년 최초 출시된 일본 소니의 반려견 로봇 ‘아이보’는 2017년 새 후속작이 미국, 일본 등에서 인기를 얻으며 순항 중이다. 놀이 상대에 그치지 않고 무선인터넷과 연동해 심리치료, 실내경비, AI 개인비서 등 쓰임새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올해 1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20’에서 곳곳을 굴러다니며 집안의 가전제품을 관리하고, AI 비서 역할도 하는 노란색 공 모양의 AI 로봇 ‘볼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장(사장)은 “개인 삶의 동반자 역할을 하는 볼리는 인간 중심 혁신을 추구하는 삼성전자의 로봇 연구 방향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 소니의 반려견 로봇 ‘아이보’. 도쿄=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로봇업계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로봇의 활동 영역으로 꼽히는 살균, 물류, 배송 등이 코로나19를 계기로 급격히 비대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실장은 “코로나19가 백신 연구만큼 로봇 기술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투자가 확대돼 더 가치 있는 서비스를 창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밀턴 게리 IFR 회장도 지난달 로봇시장을 전망한 자체 보고서에서 “전문적인 분야나 가정을 막론하고 서비스 로봇의 수요는 계속해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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