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복구 비용 농림·축산 시설에만 준다니…” 소상공인·중소기업 ‘불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6일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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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제조업체 박모 사장 제공
의료기기 제조업체 박모 사장 제공
광주 북구 첨단과학산업단지에서 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사장(48)은 지난달 7일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시간당 5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도심 곳곳이 물에 잠겼고 공장도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튿날 새벽 직원의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공장은 이미 무릎 높이까지 물이 들어차 있었다. 박 사장은 “기계와 장비들이 모두 물에 젖어 공장 가동을 할 수가 없었다”며 “1억 원가량의 재산 피해를 봤다”고 했다.

첨단과학산업단지에 입주한 142개 업체들은 이틀간 500mm 넘게 내린 집중호우로 350억 원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자체 추산한다. 결국 지난달 25일 광주 북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이곳 중소기업들은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박 사장은 “정부가 피해 복구 비용을 농림, 축산 시설에만 준다니 답답하다”고 했다.

긴 장마와 폭우로 전국 38개 시·군·구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가운데 농림축수산업 위주로 정부의 피해 복구 지원이 이뤄지다보니 혜택에서 벗어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6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현행법상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의 농림, 축산시설, 어선 등은 피해 복구 비용의 35%에 대해 국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복구 비용의 55%는 저리의 대출도 가능하다. 농업·어업·임업 종사자는 생계비도 지원받는다.

이와 달리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혜택은 적은 편이다. 연 1%대 금리로 긴급경영자금을 대출해주고, 세금과 전기요금을 낮춰주거나 납부를 유예해주는 게 전부다. 광주시에서 20년가량 철물점을 운영해온 이동의 씨(62)는 “이렇게 비 피해를 입은 적은 처음”이라며 “소상공인은 최대 7000만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빚을 더 내기 힘들다”고 했다.

정부는 특정 업종의 피해 복구에만 국고를 지원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재정 여건을 감안해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정부 관계자는 “1996년 법개정으로 국고 지원 대상이 지금처럼 정해진 뒤 재해가 있을 때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불만을 토로해왔지만 재정의 한계가 크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재난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점도 정부가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기후변화 영향으로 2020~2060년 발생할 자연재난 피해액은 연간 최대 11조 원이며, 이에 따라 지급할 재난지원금은 8300억 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타격이 큰 소상공인이나 영세 중소기업들을 재해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정부는 사회 약자인 농·어민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소상공인이나 영세 중소기업 역시 취약계층인 건 마찬가지”라며 “농어민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풍수해보험 같은 재해 대비용 정책보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보험료 절반가량 지원해주는 풍수해보험은 현재 중소기업들은 가입할 수 없다. 소상공인의 보험료 부담은 월 5만 원 정도지만 가입 건수가 지난달 말 현재 약 7600건으로 저조한 편이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농·어민과 소상공인만 가입할 수 있는 풍수해보험 대상을 영세 중소기업으로 확대하고 소상공인 가입을 더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종=남건우기자 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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