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길어진다” 현금 늘리는 기업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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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그룹 ‘현금’ 반년새 9조 증가
유휴자산-비주력 부문 매각
사업 재편 통해 체질 바꾸며 유동성 키워 코로나 장기화 대비

“여유가 없다. 실탄을 준비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주요 그룹들이 앞다퉈 자산 매각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업들이 유휴자산과 비주력 사업을 정리해 현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28일 대기업집단 전문 데이터 서비스 업체인 인포빅스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97곳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지난해 말 대비 9조7000억 원(33.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분위기는 7, 8월에도 지속되고 있다. 기업들이 부동산, 지분, 공장 설비를 가리지 않고 추가 현금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주요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미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심한 요즘은 어떤 상황에도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현금 확보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최근 가장 공격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곳 중 하나는 LG그룹이다. 6월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7조 원을 넘어서 지난해 말 대비 43.3%가 늘었다. LG는 올해 1월 ㈜LG스포츠가 보유하던 경기 구리구장을 매각한 데 이어 4월엔 LG CNS의 지분 35%와 중국 베이징 트윈타워를 매각했다. 5월엔 한국정보인증 지분을 처분했고 이달 들어서는 경기 광주의 조경회사 곤지암예원과 이곳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 등의 매각 계획을 밝혔다. 한국정보인증과 곤지암예원은 LG가 각각 10년 넘게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를 포함해 과감히 자산 처분에 나선 것은 구광모 ㈜LG 대표가 취임 이후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비핵심 자산 정리 방침에 따른 것이다.

SK그룹도 6월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4조4500억 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35.3%가 늘었다. SK는 비주력 사업 지분을 매각해 배터리, 바이오 위주의 신산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단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 4월 SK E&S의 중국 민영 가스업체 지분을 매각했고, 이달 들어서도 SKC의 화장품 원료 회사 SK바이오랜드 지분 매각,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기업 SK루브리컨츠 지분 일부 매각 계획이 알려졌다.

유통·항공·호텔 계열사를 둔 그룹들은 코로나19로 경영난이 이어지자 자산 매각을 통한 긴급 자금 수혈에 나섰다. CJ그룹은 CJ프레시웨이의 중국 단체급식 법인과 CJ CGV의 베트남 부동산 법인 등 해외 자산을 각각 4, 6월에 매각했다. 이달에는 국내 2위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인 뚜레쥬르를 매물로 내놓아 화제가 됐다. 코로나19 이후 외식사업부문은 열세를 면치 못한 반면 식자재와 간편식 부문이 업황 호조를 보이자 사업 재편에 나선 것이다.

한화그룹은 이달 한화갤러리아 광교점을 처분한 데 이어 충남 골프장 골든베이 골프리조트를 매물로 내놨다. 한진그룹도 기내식사업부를 매각한 데 이어 한진칼 소유의 경기 양평 땅 매각을 추진한다고 이달 밝혔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주력 사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 부족을 해결해야 하는 기업도 속속 늘고 있어 재계의 자산 유동화 범위는 앞으로 더욱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경기 침체에 저가 매물로 나오는 투자처를 잡기 위해 실탄을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재계 관계자는 “위기 때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으로 현금 자산을 확보했다. 코로나19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now@donga.com·홍석호 기자
#코로나19#기업 현금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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