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 가진 게 죄인가”…은퇴자들, 재산세 고지서에 ‘비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1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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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주택에 관심도 없고 그럴 돈도 없습니다. 집 한 채 가진 게 그렇게 죄가 됩니까.”

자신을 1주택 실거주자로 소개한 청원인은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작년보다 약 22% 오른 재산세 고지서를 받았다며 “1주택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말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허황되고 어리석은 것인지 치를 떨었다”고 했다.

공시가격 인상으로 이달 재산세를 시작으로 건강보험료, 종합부동산세 등의 인상이 줄줄이 예고되면서 주택 1채를 보유한 은퇴자들과 은퇴 예정자들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소득은 급감했는데도 세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그렇다고 집을 팔거나 연금으로 돌리기도 여의치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소득 없는데…1주택 은퇴자 늘어나는 부담

남편의 은퇴 후 50평대 아파트를 처분하고 서울 강동구 내 30평대 아파트로 이사한 김 씨(59)도 최근 늘어난 재산세가 부담이다. 실거주로 당장 팔기가 어려운데다, 벌이도 따로 없는 상황이지만 공시가격이 오르면서 올해 약 250만 원의 재산세를 내야한다. 김 씨는 최근 유아 등·하원 돌보미등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에 의뢰해 서울 주요 아파트 보유세(재산세+종부세)를 산출한 결과 서울 성동구 왕십리 센트라스(전용84㎡)를 소유한 65세 1주택자(보유기간 3년)가 내야하는 보유세는 지난해 약 200만 원에서 올해 260만 원으로 30% 가까이 늘었다. 공시가격이 작년보다 약 23% 올랐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전용82㎡)를 5년 보유한 59세 1주택자는 올해 보유세를 약 761만 원 내야 한다. 장기보유공제(20%)를 받고도 작년(527만 원)보다 세금이 40% 가까이 늘어난다.

정진형 KB국민은행WM스타자문단 회계사는 “공시가격이 매년 올라가면서 보유세 부담이 전반적으로 늘어났고, 전반적으로 종부세 대상 아파트도 늘어나다보니 1주택 은퇴자들로선 부담이 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건보료·양도세 부담, 주택연금 가입도 어려워

일각에서는 ‘집값이 수억 원 올랐는데 보유세 수백만 원 오른 게 무슨 대수냐’고 반박한다. 하지만 현금 흐름이 없는 은퇴자들에게는 나갈 돈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은퇴자들 사이에선 올해 공시가격 등을 반영하면 11월 산출되는 건보료가 또 한번 크게 오를 것이란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올해부터 2000만 원 이하 임대소득에 대해서도 건보료가 부과 되고, 앞으로 피부양자 요건이 강화되는 것도 걱정거리다.

그렇다고 세금부담을 줄이려 집을 파는 것도 간단치가 않다. 9억 원 이하 주택은 1주택자가 2년 이상 보유하면 양도소득세가 발생하지 않지만 9억 원 초과 주택이라면 양도세가 만만치 않다. 주택연금도 시가 9억 원 초과 주택을 보유한 은퇴생활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당초 금융당국은 시가 9억 원에서 공시가격 9억 원으로 가입문턱을 낮추려고 했지만 ‘고가주택 보유자에게까지 왜 주택연금 문호를 넓혀줘야 하느냐’는 국회 반발에 가로막혔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들을 겨냥한 부동산 대책이 실수요 1주택자들에게까지 고통을 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의 부담이 단기간에 지나치게 늘지 않도록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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