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 “산안법 시행땐 툭하면 공장 멈출 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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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지 명령 내리는 기준 모호”… 16일 시행앞 이재갑 만나 우려 전달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의 사망, 화재 등 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기업 등 원청업체의 책임을 대폭 강화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일명 ‘김용균법’)이 16일 시행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개정 산안법 시행령을 약 2주 앞둔 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대기업 임원들과 만나 “합리적인 산업재해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개정안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작업 중지 명령 등의 기준이 모호하고 책임 및 처벌 규정은 대폭 강화되는 등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현대제철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포스코 LG화학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들이 참석했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군 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였던 김용균 씨가 산업재해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전면 개정된 산안법은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 “일부 작업만 중단돼도 사실상 올스톱… 경영 악재로”

개정 ‘산안법’ 16일 시행
“재해 재발우려 작업중지 명령땐 해제 까다로워 한달 문 닫을수도”
기업 “현장과 너무 동떨어져” 우려
하청직원 산재, 원청社 책임 강화… 사망사고땐 원청업주 최대 7년刑


재해가 발생할 경우 고용부 장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현장의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도록 했고, 하청 근로자가 재해로 사망하면 원청업체의 대표이사에게까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도금 등 일부 유해 작업은 원칙적으로 하청을 금지시켰다.

이 장관은 3일 모임에서 “하청 사업주는 안전을 관리할 능력과 자금 여력이 부족한 만큼 원청 사업주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업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번 산안법 개정이 산재 감소로 이어져 경쟁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산업계 현장에서는 “정부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툭하면 공장 생산 라인이 멈추게 생겼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고용부 장관이 내릴 수 있는 ‘작업 중지 명령의 기준’이 개정 산안법 시행규칙에 담기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이날 참석자들도 작업 중지 명령과 해제의 기준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재해가 발생한 이후 다시 재해가 발생하거나 주변으로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정부는 언제든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며 “경영계에서는 이 ‘판단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계속 요구했지만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작업 중지 명령은 쉬워졌지만 명령을 해제하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은 늘었다. 우선 원청 사업자는 재해가 발생한 생산 라인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재해가 발생한 작업장의 근로자가 만약 1000명이라면 500명 이상의 의견서를 받고 난 뒤에야 중지 명령 해제 신청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또 어렵게 해제 신청을 해도 4일 이내에 열리는 해제 심의 위원회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작업 중지 명령 해제까지는 한 달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며 “한 트럭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망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서 원청업체 소속 트럭 전체를 멈추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일부 작업만 중단돼도 사실상 공장 전체 생산 라인이 가동을 멈출 수 있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 상황에 또 다른 악재가 겹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중소기업 업계에서도 현장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이 담겨 있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하청업체가 많은 중소기업이나 새롭게 산재 예방 책임이 부여된 배달대행업체,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등의 경우 산안법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곳이 많아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개정된 산안법에 따라 가맹점 200개 이상을 둔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는 매년 1회 가맹점주들에게 안전·보건 프로그램을 교육하고 설비 기계 등 안전 보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어긴 가맹본부는 5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서울과 경기권에서 외식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한 대표는 “전체 가맹점주들을 대상으로 안전 보건과 관련된 조치를 당장 취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도 책임을 본점에 과하게 부과하면 현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이번 개정 산안법 시행령으로 전기업이나 청소·시설관리·조리 같은 서비스업, 타워크레인업 등이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동일 dong@donga.com·송혜미·정순구 기자
#산안법#김용균법#작업중지#산업재해#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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