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체 삼켰다 체한 사모펀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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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악화에도 재매각 못해 한숨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외식·식음료 업체들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지만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고 있다. 한때 식음료 업체를 쓸어 담았던 사모펀드(PEF)들조차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경기 침체로 소비시장이 위축된 데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 프랜차이즈 규제 강화 등이 겹치면서 식음료 업체가 더 성장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A 시장에서 매물로 거론되는 식음료 업체는 10개가 훌쩍 넘는다. 커피업계 상위권인 할리스커피와 커피빈을 비롯해 밀크티 전문업체 공차코리아, 놀부보쌈과 놀부부대찌개 등을 거느린 놀부 등이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이거나 잠재적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매각설이 나돌았던 CJ그룹 자회사 CJ푸드빌도 회사 측이 “매각 추진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IB업계에서는 언제든 매물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CJ푸드빌이 2015년부터 적자를 내는 등 실적이 좋지 않다. 이에 저평가가 우려돼 현 시점에서는 매각을 추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CJ그룹도 사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매수자가 나타나면 CJ푸드빌을 팔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매물로 나온 식음료 업체의 M&A가 성공했다는 소식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2013년 국내 PEF 운용사 IMM 프라이빗에쿼티(PE)에 인수된 뒤 실적이 크게 좋아진 할리스커피는 꾸준히 매각을 타진하고 있지만 높은 가격이 부담이다. 커피빈, 놀부, 매드포갈릭 등도 지난해 매각을 시도했지만 성장 속도 둔화 또는 영업적자 등에 발목을 잡혀 새 주인 찾기에 실패했다. 내년 매각이 예상되는 버거킹도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4, 5년 전까지만 해도 식음료 업종의 큰손으로 군림했던 PEF들이 더 이상 매수자로 나서지 않는 게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11년 모건스탠리PE는 놀부를 인수했고 보고펀드(버거킹) 유니슨캐피탈(공차코리아) 미래에셋PE(커피빈) 등 다른 PEF 운용사들도 국내 외식업 및 식음료 업체를 대거 사들였다. PEF들은 펀드 만기 등을 감안해 외식업체를 5년 정도 보유한 뒤 국내외 기업에 팔거나 다른 PEF에 재매각 또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해 왔다.

하지만 최근 외식업 및 식음료 업계를 둘러싼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이런 PEF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지난해 4분기(10∼12월) 국내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는 64.2까지 내려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발생했던 2015년 2분기(4∼6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집에서 배달해먹거나 가정용 간편식을 직접 해먹는 게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면서 기존 업체들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정부의 프랜차이즈를 향한 각종 규제, 자영업자 증가에 따른 경쟁 심화 등이 겹치면서 경영 환경도 악화됐다. 최근 ‘외식업의 현재와 투자 기회’ 보고서를 발간한 삼정KPMG회계법인은 “PEF 등 외식업 투자자들이 정부 규제와 외식 트렌드의 변화 때문에 당초 구상한 경영 전략을 실행하지 못해 외식업에 대한 추가 투자를 주저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PEF 운용사 관계자는 “PEF가 사들였던 식음료 및 외식업체 상당수가 다시 매물로 나올 수밖에 없다”며 “국내 경기가 회복되거나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 한 이 업종에 대한 인기가 되살아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외식업체#p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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