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로 대기업 발목 잡힌 사이 중국산 김치가 세계시장 장악할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4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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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에서 열린 ‘국산 김치 경쟁력 강화’ 관련 회의에서 도마에 오른 건 ‘중국산 김치’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이날 회의에는 대상, CJ제일제당 등 대기업과 중소 생산업체 등 국내 김치 산업 관계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14일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선 국내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장악하고 있는 중국산 김치에 대한 위기감과 우려의 목소리가 수차례 나왔다. 한 회의 참석자는 “국내 김치산업 전반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사실상 중국산 김치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자리였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김치 종주국 지위까지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 중소업체 시장 뺏는 중국산 김치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식당, 급식업체 등 국내 김치 기업 거래(B2B) 시장의 70% 가량은 중국산 김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05년 본격적으로 국내시장에 들어온 중국산 김치는 국산의 3분의 1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시장 점유율을 매년 높여가고 있다. 중국산 김치의 영토 확장은 B2B 시장이 주력인 국내 중소업체에게는 직격타일 수밖에 없다. 한 중소 김치 생산업체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에서 게임이 안 되는 상황인데 매년 수입량이 늘고 있다”면서 “중소업체들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업체들은 최근 정치권이 중소기업 보호 등을 이유로 김치를 생계형 적합업종에 포함시킨 결정이 이 같은 중국산 김치의 시장 잠식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6월 국회에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됨에 따라 다음 달부터 김치, 두부, 장류 등 생계형 적합업종에 포함된 품목에 대해 대기업은 5년 간 사업 인수나 개시 확장 등을 할 수 없게 된다.

이화연 대한민국김치협회 회장은 “국내 대기업은 주로 소비자 거래(B2C)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중소업체들과는 시장이 거의 겹치지 않는다”면서 “대기업을 규제하면 그 자리에 중소기업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은 오히려 중국산”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중소업체들은 유통, 물류, 포장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B2C 시장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사실상 경쟁 상대가 아닌 대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실익도 없고 오히려 국내 김치 산업만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 발목 잡힌 대기업, 빼앗기는 세계시장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김치의 세계화를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김치산업 관련 대기업의 기술 투자나 생산공장 증설 등도 당분간 올스톱 된다. 최근 만두, 김치 등 한식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 영토를 확장 중인 CJ제일제당은 김치 사업 확대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지난해 김치 수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44%로 한창 수출량이 늘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 규제로 빨간불이 켜졌다”고 말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산 김치 수출액은 2015년 7355만 달러에서 지난해 8139만 달러로 증가 추세다.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국내 대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상황에서 12월부터 법안이 시행되면 점유율은 다시 하락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김치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발목 잡힌 사이 국산 김치가 차지하던 세계시장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이 가져가게 될 것”이라면서 “규제로 인해 중소업체 보호와 국산 김치의 세계화라는 중요한 두 개의 목표를 모두 실패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열린 정부 주최 회의에서도 “규제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김치의 세계화를 막는다”는 목소리가 다수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 규제 아닌 상생과 지원으로 산업 키워야

김치 업계는 정부가 대기업을 규제하기보다는 대·중소기업 상생을 독려하면서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김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김치의 세계화를 선언한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성과는커녕 일본이나 중국에 종주국 자리를 내놓아야 할 지경까지 왔다”면서 “규제를 통해 기존 파이를 나눠먹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관련 산업을 육성해서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산 김치 수출에 대한 정부 지원은 감소하는 추세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박주현 민주평화당 의원이 농림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로부터 최근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치 수출에 대한 물류비 지원은 2014~2016년 20억 원에서 2017년 17억 원으로 감소했다. 해외 판촉 지원비도 2016년 1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8500만 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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