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기획실 해체-일감 몰아주기 해소… 한화 ‘준법경영’ 드라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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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조 맞춰 선제적 경영쇄신… 그룹대표 기능은 ㈜한화가 수행

한화그룹이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경영기획실을 해체하고 계열사별 책임경영을 강화한다고 31일 밝혔다. 또 사외이사들의 독립성을 강화시켜 계열사 간 내부거래와 하도급 관련 부당행위를 심의하도록 하는 일종의 ‘사내 공정거래위원회’를 가동한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에 맞춰 선제적으로 ‘자발적 혁신’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 일감 몰아주기 의혹 업체 지분 완전 매각

이날 한화그룹의 경영쇄신안은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아온 정보기술(IT) 분야 계열사 한화S&C에 대한 지분 매각 계획과 함께 발표됐다. 한화 계열사의 IT 관련 계약을 도맡아 온 한화S&C는 지난해까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50%),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25%),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25%)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압박하자 한화는 지난해 10월 한화S&C를 에이치솔루션(존속법인)과 한화S&C(신설법인)로 물적 분할한 뒤 에이치솔루션이 가진 한화S&C의 지분(100%) 중 44.6%를 재무적 투자자에 매각했다.

한화 오너 3세들이 가진 한화S&C의 지분은 줄어들었지만 존속법인인 에이치솔루션의 지분(100%)을 나눠 갖고 있는 점은 여전히 논란이 됐다.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가진 계열사로 한정해 현행법상 규제 대상은 벗어났지만 편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공정위는 올 3월 한화S&C에 대한 직접지배가 간접지배로 바뀌었을 뿐 한화그룹의 일감 몰아주기가 해소된 것은 아니라며 ‘판단 유보’ 결정을 내리고 현장 조사에 나섰다. 한화그룹도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해소할 추가 개혁안을 예고해 왔다.

한화S&C와 한화시스템은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의결했다. 합병법인은 ‘한화시스템’이라는 사명으로 8월에 출범한다. 한화시스템과 한화S&C의 합병 비율은 각 사의 주식 가치에 따라 1 대 0.8901로 정했다. 합병법인에 대한 에이치솔루션의 지분은 26.1%가 되지만 추가적인 지분 매각을 통해 14.5%까지 낮출 계획이다.

한화 측은 “이번 합병과 매각을 통해 합병법인에 대한 에이치솔루션의 지분이 10%대로 낮아짐으로써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취지에 부응하게 된다. 향후 나머지 보유 지분(14.5%)도 전량 해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컨트롤타워 없애고 자체 감시 기구 강화

한화는 일감 몰아주기 해소에 그치지 않고 현 정부의 재벌개혁 드라이브를 의식한 선제적 혁신 조치를 함께 내놨다. 이사회 중심 경영 및 계열사 독립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그룹 경영기획실을 해체하고 개방형 사외이사 추천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한화는 일자리 창출 등 정부 정책에 신속히 대응해 왔다. 2월 문재인 대통령은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지역 청년 500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한 한화큐셀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취임 후 첫 국내 대기업 현장 방문이었다. 이번 쇄신안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강조해 온 ‘재벌의 자율적 개혁’과 맞닿아 있다.

앞으로 경영기획실 대신 최상위 지배회사인 ㈜한화가 그룹을 대표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경영기획실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생긴 구조조정본부 이후 총수 보좌와 인수합병(M&A), 채용, 사회공헌 등 그룹의 주요 업무를 관장해 왔다. 이번에 경영기획실이 폐지됨에 따라 각 계열사에서 파견됐던 직원은 최소한의 인원을 남기고 2월부터 소속회사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부터 경영기획실장을 맡아온 금춘수 부회장은 ㈜한화로 옮길 예정이다. 그룹 대외 소통은 신설된 커뮤니케이션위원회가 맡게 된다. 2013년부터 주요 경영사항을 협의하고 계열사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 오던 경영조정위원회(의장 금춘수 부회장)도 없앨 예정이다.

한화는 준법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컴플라이언스위원회도 신설했다. 초대 위원장은 이홍훈 전 대법관이 맡는다. 또 개방형 사외이사 추천제도를 도입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룹 출신 인사가 사외이사로 임명되는 것을 지양할 방침이다.

이사회 내 위원회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내부거래위원회를 개편하고 상생경영위원회도 신설한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심의하는 내부거래위원회는 앞으로 사외이사들로만 구성해 엄격하게 운영된다. 하도급 관련이나 갑을 관계, 기술 탈취 등 공정거래 이행과 관련된 사항을 심의하는 상생경영위원회도 새로 만들어 사외이사들로만 운영한다. 이사회에 참석해 주주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주주권익 보호 담당 사외이사’ 제도도 도입할 계획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기업 스스로 내부견제 장치를 만든 것은 긍정적이지만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 기업경쟁력 강화에 기여할지는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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