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 일자리 원하는 청년… 일단 취직만 하라는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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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눈높이 낮춰 中企취직 유도하는 청년일자리정책은 비현실적”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빨리 취직하도록 유도하는 현행 청년일자리 정책이 비현실적이라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적했다. 취업준비생들은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질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데, 정부 대책은 청년들의 이런 기대와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도 정부는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청년들에게 추가로 예산을 직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 때문에 청년실업 문제가 실타래처럼 꼬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DI는 6일 ‘청년기 일자리 특성의 장기효과와 청년고용대책에 관한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청년고용대책의 효과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청년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장기 백수생활도 감수하는 원인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사회초년생이 첫 직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았다면 10년 뒤에도 평균보다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예를 들어 대졸 남성이 첫 직장에서 평균보다 10% 높은 임금을 받았다면 입사 후 9∼10년이 된 시기에도 평균보다 4.4% 이상 높은 임금을 받았다.

기업 규모와 정규직 여부도 중장기적으로 임금 수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직원이 100명 이상인 사업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대졸 남성은 첫 직장이 중소기업인 남성보다 9∼10년차가 되는 시기의 임금이 약 9% 높았다. 정규직으로 시작한 대졸 남성은 임시직으로 시작한 대졸 남성보다 10년 뒤 임금이 약 15% 높았다. 첫 직장이 향후 10년을 좌우한 것이다.

첫 직장에서 받는 대우가 이렇게 중요한데도 정부는 청년들이 눈높이에 맞지 않는 중소기업에라도 일단 빨리 입사하도록 지원금을 주고 있다. 일례로 ‘중소기업 청년취업인턴제’는 청년인턴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해당 근로자에게 취업지원금을 준다. 청년내일채움공제 역시 중소기업 취업자가 2년을 일하면 지원금을 준다. 두 제도 모두 중소기업에 들어가 오래 일하도록 유도하려는 취지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도 대졸 남성이 졸업 후 첫 직장에 취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지난해 기준 9.2개월로 2005년보다 2.5개월 늘었다. 같은 기간 대졸 여성의 첫 직장 취업 기간도 1.1개월 증가했다. 일자리 정책이 청년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중소기업 위주로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종전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등 일자리를 얻은 청년에게 직접 정부 지원금이 가도록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한계상황에 처한 중소기업까지 연명시키는 일자리 정책은 직장을 구한 청년들의 경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에 오래 머물러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에서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로 이동하는 경우에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의 일자리 정책이 청년들에게 하향취업을 강요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며 “취지와는 달리 중소기업 취업자에 대한 직접 지원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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