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부도덕한 기업엔 투자 안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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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 등 물의 빚은 기업 배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주주권 행사
기업 길들이기-주가 악영향 우려도

국민연금공단이 가습기 살균제 사태, 분식회계 같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 제한하기로 했다. 향후 이런 회사들의 주식을 사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보유 주식을 처분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기로 했다. 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기업에 국민 지갑에서 나온 공적기금을 투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해 “국민연금이 가습기 살균제 기업이나 분식회계 등으로 지탄을 받은 기업에 투자한 것을 두고 많은 비판이 있다”며 ‘사회적 책임 투자 전문위원회’ 설치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책임 투자 전문위원회는 이런 ‘문제 기업’을 선별해 투자 제한 등의 의견을 기금운용위원회에 제안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됐다. 현재 국민연금 위탁 자산의 10% 수준인 사회책임 투자를 5년 뒤엔 30%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올 7월 기준 6조2000억 원 규모인 사회책임 투자액이 향후 20조 원으로 늘어난다. 위탁 운용사를 선정할 때도 사회책임 투자 계획이나 실적을 평가한다. 장기적으로 사회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실적이 좋고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높은 수익률이 기대된다는 판단에서다.

사회책임 투자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됐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전체 운용 자산의 절반가량이 이런 형태로 운용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화력발전에서 매출 30% 이상을 벌어들이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온실가스, 미세먼지 등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국민연금은 또 내년 하반기(7∼12월)에 기관투자가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진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은 중점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공개하고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박 장관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더라도 적용 대상은 제한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자칫 개별 기업에 무리하게 ‘나쁜 기업’이라는 딱지를 붙여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증시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의견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등의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부 입김을 차단하지 못하면 자칫 기업 길들이기로 악용될 수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역량부터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국민연금#투자#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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