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5곳 적자에도… 유커 몰려드는 명절 의무휴업 법안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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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면세점, 이대로는 안 된다]개장 1년 서울 신규면세점 ‘비명’
직원 30명 매장에 손님은 10명… 누적손실 신세계 372억-SM 208억
“정부에 사기라도 당한 기분”

성장보다 규제에 초점
인천공항 2터미널 입찰 앞두고 주무 관세청, 대기업 배제 검토
‘특허기간 다시 10년’ 개정안 무산

지난해 문을 연 서울의 한 시내면세점.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이 과도한 마케팅 비용 지출과 관광객 유치 실패로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적자를 내며 고전하고 있다. 정부 정책도 면세점 산업 육성과는 거리가 멀어 지난해 12월 추가 선정된 서울시내 면세점 4곳이 모두 문을 열면 출혈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문을 연 서울의 한 시내면세점.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이 과도한 마케팅 비용 지출과 관광객 유치 실패로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적자를 내며 고전하고 있다. 정부 정책도 면세점 산업 육성과는 거리가 멀어 지난해 12월 추가 선정된 서울시내 면세점 4곳이 모두 문을 열면 출혈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DB
 8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단로 두타면세점 8층. 외국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홍삼과 한국 화장품을 직원 30여 명이 판매하는 이 층에 관광객은 10여 명뿐이었다. 패션 브랜드가 주로 입점한 3층과 4층은 개장 9개월째인 지금도 입점이 안돼 가림막을 쳐놓은 공간이 눈에 띄었다.

 같은 날 찾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SM면세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연간 매출 10조 원으로 세계 1위 규모인 한국 면세점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원칙도, 일관성도 없는 정부 정책 탓이라는 비판이 많다. 한국이 멈칫하는 사이 주변국 일본과 중국은 면세점 경쟁력 강화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 신규 면세점 1년 성적표는


 동아일보가 10일 2015년 12월 말부터 지난해 5월까지 차례로 문을 연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5곳을 확인한 결과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모두 적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업계 관계자는 “최종 집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면세점 5곳 모두 연말까지 계속 적자였다”고 전했다.

 공식적인 누적 영업이익은 면세점별로 지난해 6월 또는 9월까지만 공개돼 있는데 모두 수백억 원대 적자다. 지난해 9월까지 HDC신라면세점은 167억 원, SM면세점은 208억 원, 한화갤러리아면세점은 305억 원, 신세계면세점은 372억 원 적자였다. 두타면세점은 6월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160억 원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현대백화점면세점 등 지난해 12월 추가로 선정된 신규 면세점 4곳이 유명 브랜드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앞서 문을 연 업체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2015년 말 개장한 한 중소·중견 면세점 대표는 “정부 입찰에 참여할 때만 해도 추가로 면세점을 선정할 줄은 몰랐다. 정부에 사기당한 느낌”이라고 푸념했다.

 앞으로도 사업성이 개선될지는 불투명하다. 서울 시내 면세점 수는 최근 3년 새 6개에서 13개로 늘었는데 중국의 관광 규제 등으로 관광객이 늘어날 전망은 밝지 않기 때문이다.

○ 면세점 육성에 역행하는 정책

 업계에서는 정부가 면세점 육성에 역행하는 정책만 내놓는다는 불만이 많다. 지난해 3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 ‘면세점 제도 개선 방안’은 2013년 관세법 개정으로 5년으로 단축됐던 면세 특허 기간을 종전처럼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었다. 면세점 사업의 안정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았던 조항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로 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 과정에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12월 관련 법 개정이 무산됐다.

 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한 글로벌 진출 전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규제 정책만 속속 추진됐다고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9일 면세점 특허수수료를 매출액 규모에 따라 인상하는 내용의 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12월 27일에는 면세점 신규 특허를 내줄 때 시장지배적 추정사업자의 점수를 줄일 수 있는 근거 조항도 신설했다. 하지만 시장지배적 추정사업자를 판별하는 잣대는 국내 기준이어서 외국인을 주로 상대하는 업종 특성과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면세점 사업을 규제하는 움직임은 올해 초 진행될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면세점 입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청은 공항 면세점 입찰 방식도 사업자 자격까지 따지는 시내면세점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기업은 면세점 입찰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회가 면세점 사업을 보는 시각도 헷갈리고 있다. 김종훈 의원(무소속)이 지난해 11월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는 면세점을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하고,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드는 추석과 설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면세점을 동네 마트 정도로 생각해 지역 상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규제 대신 성장에 초점 맞춰야

 2015년부터 시작된 ‘면세점 대전’은 올해 또 벌어지게 됐다. 면세점 특허 기간 연장을 포함한 관세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때문이다.

 올해 12월 특허 기간이 만료되는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의 입찰 공고는 상반기에 날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는 동화외교관면세점, 2019년에는 신라면세점 서울점 특허가 종료된다. 뒤이어 2015년 영업을 시작한 신규 면세점 특허가 줄줄이 종료되면서 다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면세점 관계자는 “5년 뒤에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데 우수 인력이나 명품 브랜드가 면세점에 들어오려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승욱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특허제를 통해 진입장벽을 치고 있기 때문에 각 기업은 사업성이 보장될 것으로 생각하고 경쟁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측면이 크다. 이럴 바에야 최소한의 기준만 두는 허가제로 전환해 각 사업자가 투자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완전경쟁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면세점 산업에 대한 근본적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는 관세청이 규제의 잣대로 면세점 신규 허가를 비롯한 관련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면세점이 주요 관광산업 자원으로 떠오른 만큼 산업통상자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부처들이 참여해 유통업과 관광산업 성장 동력의 하나로 면세점 정책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경영학)는 “정부가 그동안 면세점을 전력 등 기간산업에 버금갈 정도로 통제하면서 관광산업 전체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왔다”며 “면세점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를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새샘 iamsam@donga.com·박은서 / 세종=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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