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적자기업도 퇴출 없는… ‘코스피 요지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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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5년 6년간 상장 기업 5곳중 1곳꼴 3년 이상 연속 적자
자본잠식 등 조건 피하면 살아남아 투자 신뢰 추락-증시 활력 떨어뜨려
올해부터 적자기업도 상장 가능 “글로벌 수준 퇴출기준 필요” 지적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상품권 유통회사인 A사는 시가총액 300억 원 중반 규모의 중견기업이다. 이 회사는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16년간 흑자를 딱 한 번(2002년) 냈다. 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7∼9월) 말 현재 267.7%에 이른다. 주가는 지난해 700∼1만 원까지 널뛰었다. 실적이 워낙 부진한 데다 주가 흐름도 예측하기 어려워 지난해 이 회사에 대한 증권사 보고서조차 없었다.

 하지만 A사를 둘러싼 소문은 무성하다. 한 투자자는 “호재가 있다는 주변의 말을 믿고 A사 주식을 3000만 원어치 샀다가 거의 다 잃었다”고 말했다. A사는 만년 적자기업이지만 증시 퇴출 대상은 아니다. 2년 연속 자기자본이 2분의 1 이상 줄지 않으면 퇴출되지 않는 거래소 규정 때문이다.

  ‘만년 적자’ 상장기업이 한국 증시의 힘을 떨어뜨리고 있다. 증시를 혼탁하게 만들고 한계기업의 구조조정도 더디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입도 퇴출도 어려운 증시 상장 규정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 진입과 퇴출 규정을 손질해야 투자자들의 신뢰와 기업공개(IPO)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자본시장연구원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서 2010∼2015년 기준으로 3년 이상 연속 적자를 낸 기업은 전체 736개 상장사의 17.9%(132개)를 차지했다. 2010년 이후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한 6년 연속 적자기업도 19곳이나 됐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와 견줘 코스피의 적자기업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라 상장 기업이 △최종 부도 발생 △자본 전액 잠식 △2년 연속 자본 잠식(자본금의 2분의 1 연속 감소) △2년 연속 매출액 50억 원 미만 등 4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퇴출된다. 2010∼2015년 21개 기업이 자본 요건에 미달해 퇴출됐다.

 적자기업이 반드시 한계기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 적자가 반복되는 기업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증시의 활력을 반감시킬 수 있다. 한국과 경쟁하는 글로벌 증시는 더 강도 높은 퇴출 규정을 갖고 있다. 특히 글로벌 IPO 시장에서 한국 거래소와 직접 경쟁하고 있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1년 이상 자본 잠식이 된 기업을 퇴출시킨다. 퇴출까지는 아니더라도 ‘2부 시장’으로 강등시키는 ‘강등제’를 통해 1부 시장의 질도 관리한다.

 국내 증시에서 올해부터 성장 가능성이 있는 적자기업도 상장할 수 있도록 진입 문턱이 낮아진다. 이 때문에 퇴출 규정을 더 강화해 진입과 퇴출이 보다 활발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퇴출이 어렵다면 일본처럼 코스피에서 코스닥으로 편입시키는 강등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코스피에서 코스닥으로 강등된 사례는 없다.

 거래소도 최근 퇴출 규정 손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특정 업계가 전반적인 불황일 때 적자나 자본 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무더기 퇴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고민거리다. 거래소 관계자는 “실질심사를 통해 기업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퇴출시키는 방향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코스피#적자기업#증시#상장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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