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럭셔리 인텔, ‘효율+저렴’ 모바일 특성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인텔이 모바일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서 실패한 이유

 인텔은 PC의 두뇌로 불리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절대 강자의 지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인텔은 4월 사실상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능을 수행하는 SoC(System on Chip) 사업을 접었다. 모바일 시장에서의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그동안 마이크로프로세서 산업을 선도해 왔고 최고의 인적, 기술적 자원을 보유했으며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인텔은 모바일 시장에서 왜 실패했을까. 혁신을 위한 대담한 노력이 왜 기대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했을까. DBR 212호는 인텔의 모바일 SoC 시장 실패 요인을 집중 분석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기존 방식 답습이 화 불러


 인텔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모바일 SoC 시장에 약 200억 달러(약 23조 원)를 쏟아부었다. 특히 마이크로프로세서 부문 선두 기업이라는 입지를 바탕으로 경쟁 업체들보다 성능이 뛰어난 모바일용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모바일 시장은 인텔이 익숙했던 PC 시장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인텔은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PC의 지배력을 모바일로 그대로 옮겨 오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인텔은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 PC에서 주로 사용되는 x86 기반 프로세서를 모바일 기기에까지 확대 적용했다. x86은 성능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PC 기반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전력 효율이 높지 않고 발열이 심했다. 가격 또한 비쌌다. 그 때문에 2008년 LG전자가 스마트폰인 GW990에 x86 기반 ‘무어스타운’을 탑재하려고 시도했다가 전력 소모 문제로 출시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텔은 이후에도 x86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 2012년 ‘메드필드’라는 이름의 새로운 프로세서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이때도 동일한 x86 방식을 사용했다. 메드필드 시리즈는 기술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연산 능력이 경쟁사의 모바일 프로세서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발열 및 전력 소모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했다. 그러나 삼성, LG, 화웨이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인텔 제품을 외면했다. 아울러 인텔이 에이수스, 에이서에 공급할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자 그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기업들도 인텔에 등을 돌렸다. 인텔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x86 계열의 제품을 양산했지만 결국 실패만 거듭하게 된다. 시장 선도 기업이던 인텔은 과거의 성공 방식에 얽매여 모바일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 생태계 싸움에서 패한 인텔

 인텔의 실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회사가 ARM이다. ARM과 인텔은 프로세서라는 같은 아이템을 공유하지만 타깃 시장이 달랐다. ARM은 주로 개인휴대단말기(PDA), 휴대전화 같은 저전력 소용량 데이터 처리용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디자인했다. 반면 인텔은 x86과 같은 개인용 컴퓨터와 서버용 프로세서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프로세서 시장의 무게 추가 PC에서 모바일 기기로 바뀌면서 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고제원·고성능 프로세서에서 저전력 프로세서로 넘어간다. 이때까지 고성능 프로세서 시장은 인텔의 독무대였다. 인텔은 자신들의 기술력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도 기존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이게 패착이었다. 배터리로 운용되는 모바일 기기에서 인텔의 프로세서들은 성능은 좋았지만 전력 효율이 떨어져 배터리 소모가 심했다. 특히 인텔의 x86 계열 프로세서들은 발열이 심해서 물리적으로 이를 식혀 줄 부품이 필요했다. 소형화 경량화 경쟁이 붙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인텔 제품을 비싸고, 전력 효율이 떨어지며, 발열이 심해 스마트폰에 쓰기 힘든 것으로 인식했다.

 이에 반해 ARM은 초기부터 저전력 소용량 데이터 처리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전문 기업이었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다. 특히 ARM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방식으로 스마트폰 제조사들을 사로잡았다.

 ARM은 전 세계 모바일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의 시장 점유율이 95%에 달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ARM이라는 회사를 접할 기회는 별로 없다. 왜 그럴까. ARM은 인텔을 제치고 시장의 절대 강자가 됐지만 직접 제품을 제조하지는 않는다. 다만 스마트폰 제조사에 자신들이 디자인한 설계도를 라이선스 형식으로 판매할 뿐이다. 프로세서 하나로 대부분의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데다 저렴한 가격에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스마트폰 관련 제조사들이 ARM의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시작했다. 제조사들은 이렇게 사들인 설계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경해서 실제 제품을 만들었다. ARM이 ‘반도체 디자인 업체’ ‘반도체 지식재산권(IP) 업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렇게 ARM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업체만 해도 전 세계 300여 곳이나 된다. 삼성전자나 퀄컴도 ARM의 고객이다.

 이에 반해 인텔은 직접 제품을 생산했다. 설계는 물론이고 D램, 플래시메모리 등 다양한 부품들 역시 자사의 제품을 고집했다. 따라서 고객사의 니즈가 반영될 틈이 없었다. PC 시장에서 인텔은 절대 ‘갑’이었기 때문에 인텔이 만들면 PC 제조업체들은 그 제품을 쓰면 됐다. 그러나 모바일 시장은 PC 시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런데도 인텔은 기존 PC 시장에서 성공했던 방식을 모바일 시장에 지속적으로 끼워 맞추려고 했다.

 ARM의 전략은 자연스럽게 모바일 기기 업계에 ARM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제조사들은 ARM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자사에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일단 시장의 중심축이 ARM으로 넘어가니 인텔이 아무리 제품 성능의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 자원 배분의 실패


 인텔이 모바일 시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인텔은 2000년대 초반부터 모바일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그래도 인텔의 핵심 사업은 역시 고성능, 고가격, 고마진 CPU와, 그보다 더 성능이 뛰어나고 가격, 마진이 큰 서버용 CPU 개발에 있었다. 조직의 최고 자원이 이쪽에 우선 배분된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반면 기존 PC나 서버용 CPU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기능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가격 및 마진이 낮으며, 잠재력이 아직 입증되지 않은 모바일 시장을 위한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는 최고의 자원을 투입하지 않았다. 김한얼 가천대 교수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혁신은 기존 사업과 다르기 때문에 제 살을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라며 “기존 조직이 이런 고통을 받아들이기 무척 어렵다는 것을 인텔의 사례가 잘 보여 준다”라고 말했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dbr#경영#전략#인텔#모바일용 마이크로프로세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