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배구조 개편 명분줬지만… 이해 어긋나면 재공격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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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삼성전자 분사 요구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요구한 삼성전자 기업분할 및 합병은 삼성그룹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및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삼성이 고려해온 선택지 대부분이 엘리엇 측 제안과 결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원활한 경영보다는 투자 수익을 중시하는 헤지펀드 특성을 감안하면 삼성 측이 웃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30조 원 특별배당 등 삼성전자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들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엘리엇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반대하면서 삼성그룹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긴장을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엘리엇이 겉으로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의 명분을 세워주는 ‘백기사’를 자처한 듯 보이지만 자신들의 제안이 거부당할 경우 다른 헤지펀드들과 규합해 다시 한 번 공세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 삼성이 원하는 것을 짚어준 엘리엇

 엘리엇이 5일(현지 시간) 삼성전자에 보낸 공개서한에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구체적인 개편 방안들이 담겨 있다.

 삼성그룹은 2013년부터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양대 축으로 하는 전자계열사와 금융계열사의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면서 계열사 간 얽힌 지분을 정리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삼성그룹에 남게 되는 숙제는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다.

 현재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0.52%)만으로는 그룹 핵심 계열사이자 등기이사로 있을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강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통합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3.71%)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그쳤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삼성전자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회사와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봤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통합 지주회사는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17.23%)을 자연스럽게 흡수해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오랫동안 이런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공식화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그러나 해외 자본인 엘리엇이 지주회사 개편 방안을 공개적으로 제안함으로써 삼성은 ‘주주 제안의 긍정적 검토’라는 명분을 얻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안면몰수 가능성도

 삼성그룹은 엘리엇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 추진 당시 엘리엇은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합병안이 불공정하고 불법적이며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심각하게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주주 가치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엘리엇의 공개서한에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밝힌 것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백기사로 위장한 ‘꼼수’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엘리엇은 당장 다양성과 독립성을 위해 내부 임원의 겸직을 배제하고 해외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최소 3인 이상 새로운 사외이사로 선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엘리엇의 삼성전자 지분은 현재 0.62%에 불과하지만 다른 해외 자본들과 동맹을 결성할 경우 자신들이 추천하는 인물을 사외이사로 추천할 가능성도 있다. 또 엘리엇이 제시한 특별배당 30조 원에 대해서도 지나친 수준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배당액 약 3조 원(주당 2만 원)의 10배에 이르는 수치다.

 삼성전자는 당장 27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엘리엇이 추가 행동에 나서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및 프린팅솔루션 사업부 분할 승인 등의 안건을 이번 주주총회에 상정한 상태다. 삼성그룹으로서는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공식적으로 나서는 시작점이자 얼마만큼 압도적 지지로 등기이사로 선임되느냐를 통해 경영권 승계의 명분을 얻는 의미 있는 자리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새로운 사외이사 선임 등의 제안을 무시한 상태에서 이 부회장의 선임을 강행할 경우 엘리엇은 이를 추가 공격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며 “엘리엇의 공개서한 발송 뒤 이미 증권업계 및 시장에서는 엘리엇 측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엘리엇으로서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라고 분석했다.

서동일 dong@donga.com·박성진 기자
#엘리엇#삼성전자#분사#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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