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도 ‘냉랭’…위기의 아이스크림 시장,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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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슈퍼마켓. ‘아이스크림 할인 판매’라는 문구가 적힌 냉동고를 열고 A아이스크림을 꺼냈다. 가격을 묻자 점주는 400원이라고 말했다. 이 아이스크림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400원에 팔렸다. 현재 A아이스크림은 비슷한 규모의 서울 중구 슈퍼마켓에서 800원, 20m 떨어진 편의점에서는 1000원에 팔린다.

막대 형태의 B아이스크림은 일부 슈퍼마켓에서 200원에 팔리고 있다. 제조업체에 문의하니 1990년 당시 판매 가격이 200원이었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은 것이다.

12일 롯데제과, 해태제과, 빙그레, 롯데푸드 등 아이스크림 업체들에 따르면 현재 동네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상당수 빙과류 제품의 가격은 199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네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아이스크림 반값 할인’이 고착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이 때문에 업체 수익성이 떨어지고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영업 적자가 쌓이고 있지만 마땅한 돌파구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에 예년보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지만 아이스크림 업체들의 매출은 이런 이유로 오히려 줄었다. 유통업체에 공급되는 단가 기준으로 C사의 올 5,6월 아이스크림 매출은 1000억 원. 2014년 1100억 원, 지난해 1050억 원에 이어 계속 줄고 있다. D사도 비슷해 2015년 5,6월에는 전년 동기대비 4%, 올해는 13% 줄었다. 반면 정가로 빙과를 파는 편의점 CU의 경우 지난해 5,6월 아이스크림(하겐다즈 나뚜르 등 프리미엄 제품 제외) 판매액은 13% 늘었다.

이런 현상은 제조업체의 공급단가가 낮아지면서 비롯됐다. 아이스크림 공급 단가가 낮아진 건 1990년대 중반부터다. 늘어나는 대형마트에 손님을 뺏긴 동네 슈퍼마켓들은 반값 아이스크림을 미끼 상품으로 활용했다. 슈퍼마켓들은 아이스크림의 할인 판매를 위해 제조업체에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출산 인구 감소로 아이스크림을 즐겨먹는 소비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경쟁이 치열해진 제조업체들이 이에 응했다. 편의점보다 슈퍼마켓에 공급하는 단가가 훨씬 낮아진 이유다. 아이스크림 업계 관계자는 “슈퍼마켓들이 힘을 합쳐 제조업체와 협상에 나서자 제조업체들의 제 살 깎기 식 할인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을 대체할 상품이 많아진 것도 시장 위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커피전문점과 빙수전문점 등 디저트 전문 카페가 빠르게 늘면서 ‘전통적인’ 아이스크림 시장을 위협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국내 시장규모는 2013년 1조9371억 원에서 2014년 1조7698억 원 2015년 1조4996억 원으로 감소했다.

업체들은 “현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제품을 내놓아도 성공할 가능성이 적고, 그나마 적자가 쌓이면서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쓸 밑천도 별로 없다. 업체들은 과거처럼 권장소비자가격 표시가 의무화되길 바라고 있지만 유통업체들의 반발로 여의치 않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출혈 경쟁과 소비 인구 감소가 겹치며 아이스크림 시장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앞으로는 기존 제품과 완전히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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