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생사의 기로에 선 造船 구조조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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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 키우는 구조조정 공포… 잘못하다간 회복 불능의 재앙
조선업 구조조정 실패하면 시장에서 영구 퇴출
유능한 기술 인력 잃지 말고 전환배치-유연근무로 구해야
재취업 지원만으로는 한계… 파견법 개정까지 고려해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구조조정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의 하늘을 떠돌고 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구조조정의 공포 앞에 국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형 조선소가 집중되어 있는 거제와 울산에서는 더이상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이미 현실의 문제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늘어나고 지역 경제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구조조정은 공급과잉이나 금융위기로부터 기업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인원을 감축하고, 사업조직을 매각하거나 축소하는 등 부실 사업이나 비능률적인 조직을 생산적인 사업구조로 개편하는 수술이다. 따라서 심각한 경영실패에 대한 원인과 대책을 신속히 분석하고 근로자와 경영진 등 이해관계자는 고통스럽지만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 회피할 수 없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거나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잘못된 전략을 세운다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구조조정에 성공하면 우리 조선산업은 계속해서 1부 리그에 잔류할 수 있지만 반대로 실패하면 영원히 그라운드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일본과 독일이 전자의 사례라면, 영국과 스웨덴은 후자의 사례이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조선산업의 구조 재편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필자는 노사 당사자의 태도와 조선산업의 인력 운영 방향, 대량실업 사태에 대한 대책이라는 관점에서 보충하고 싶다.

구조조정은 위기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경쟁과 위기의 시작이다. 인력 감축이 없는 포괄적 구조조정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기업의 미래를 위한 노하우와 유능한 기술 인력마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인건비를 절감하되 기업 내의 귀중한 인적자원을 훼손하지 않도록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전환배치, 휴직, 근로시간 계좌제도, 유연한 시간 선택제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노동조합은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실업 대책을 위한 교섭을 우선으로 해야지 임금 인상과 성과급 확대 등 ‘위로’라는 명목으로 살아남은 자의 ‘돈 잔치’로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이 근로자들의 해고를 방치하면서 남아 있는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이나 성과급에만 신경 쓴다면 해고된 근로자들의 배신감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경쟁력을 훼손하는 무분별한 하청구조도 이 기회에 손질해야 한다. 우리 조선산업은 원청의 직영 근로자 비율이 20%대에 불과하고 나머지 70% 이상은 하청 근로자로 운영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1990년대 중반까지 6만 명에 달했던 전체 조선소의 직접고용 인력이 1996년에는 2만8000명 수준으로 감축되었으며, 최근에는 1만6000명 수준까지 떨어지는 등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거쳤다. 그렇지만 체계적으로 훈련되고 노하우의 축적이 가능한 원청 직영 근로자의 비율은 언제나 6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하청 근로자의 비율은 30%, 파견 근로자의 비율도 10% 정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은 이를 참고하여 우리 조선산업의 왜곡된 인력구조를 숙련된 기술인력 중심으로 개선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구조조정의 결과 대량실업은 불가피하다. 실업자들이 조속히 산업계로 재진입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가 강구되어야 하지만, 기존의 재취업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주변의 기업들이 부담 없이 한시적이라도 인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파견법의 개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노동개혁의 과제를 언제까지 낡은 이데올로기의 감옥에 가둬 둘 것인가. 쥐를 잡는 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대수인가. 파견 대상업무와 파견 조건이 유연해지더라도 기존 정규직 근로자의 일자리를 훼손하지 않도록 노사가 합의하여 파견 대상업무와 파견 근로자의 수까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면 파견법이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조정은 경영 실패의 자기 고백이다. 그럼에도 그에 책임이 있는 경영주는 자신의 몫만 챙기려 할 뿐 위기에 맞서 책임을 지려는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공허한 비판만 쏟아낸다. 정치권도 변죽만 울릴 뿐 실제로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이 산업 전체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여야정과 노사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황금 같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길 바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구조조정#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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