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환율보고서는 TPP 비준 노린 오바마의 묘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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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환율 관찰국’ 돌직구 배경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독일 등 5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미국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가 자국 의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미 의회 내에 퍼진 TPP 조기비준 반대론을 달래기 위해 대미(對美) 무역흑자가 큰 동북아시아 국가들을 겨냥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일 “미 정부의 환율 보고서 발표 직후 야당인 공화당에서 환영 성명이 나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보고서는 단순히 환율 문제가 아닌, TPP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해석이 대내외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지난달 30일자 보도를 통해 “환율 보고서에는 미 행정부가 TPP 비준을 위해 의회를 설득하려는 목적이 담겼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난해 10월 타결된 TPP는 올해 안에 미 의회 비준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대선 경선이 끝나 의회 상황이 진정되면 TPP를 진전시키기 시작할 상황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민주-공화 양당의 주요 대선주자들은 TPP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FTA)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공화당 대선 경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FTA에 대해 “미국의 제조업을 공동화(空洞化)시키고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도 “TPP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기준에 미달했다”며 반대를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TPP 처리를 위해 미국 정부가 무역 흑자국을 겨냥한 보고서를 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환율에 손을 대 자국 제품을 유리하게 팔고 있다’는 미국 내 여론을 역이용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환율 조작에 강경한 자세를 보여 TPP 반대론자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뒤, 조기 비준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의회에 명분을 주면서 ‘오바마 임기 내 비준 처리’라는 실리를 챙길 수 있다.

이 같은 미 행정부의 전략은 한국 정부의 행보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가뜩이나 수출 환경이 어려워진 마당에 원화 가치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을 사실상 수수방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TPP 참여 논의가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조약 비준이 급물살을 타게 되면 미일 경제동맹 강화를 지켜봐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릴 수도 있다. 게다가 올 3월 오린 해치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이 “한국의 한미 FTA 이행이 미흡하다”며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등 한미 경제동맹이 최근 들어 곳곳에서 이상 조짐을 보이는 것도 우려를 낳게 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TPP 등 메가 FTA가 글로벌 통상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큰 틀에서 환율 정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미국과의 경제 동맹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일본 외환시장에선 미국의 환율정책 관찰대상국 지정 소식에 장중 106.13엔까지 떨어졌다. 2014년 10월 15일(105.92엔) 이후 1년 6개월여 만에 최저치다.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보다 3.11% 내린 16,147.38엔으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도 1137.8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1.5원(0.13%) 하락했다. 코스피도 이날 전 거래일보다 16포인트(0.8%) 하락한 1,978.15에 장을 마쳤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 /한정연 기자
#환율보고서#tpp#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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