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의욕 꺾는 ‘규제 암초’ 놔둔채… U턴 지원 유명무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총선 이후! 이제는 경제다]

《 ‘생각을 바꿔 실천하고 혁신하자’란 현수막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4일 오후 둘러본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 내 A산업 공장 내부는 대낮인데도 컴컴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대신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사무실 주변에는 우편물과 빈 박스만 쌓여 있었다. 삼성전자 3차 협력업체인 A산업은 5개월 넘게 밀린 임차료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달 초 플라스틱 성형기계를 모두 팔았다. 삼성전자 생산라인이 해외로 옮겨가 주문 물량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생산원가 상승에 따른 영업이익률 감소, 인건비 절약 등의 이유로 삼성전자가 광주사업장 생산라인을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한 때는 2011년. 청소기 생산라인 6개를 차례로 베트남으로 옮겼다. 세탁기 생산라인 3개 중 2개도 러시아,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냉장고 생산라인도 올해 1월 베트남으로 보냈다. 》

18일 오후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에 위치한 삼성전자 3차 협력업체 A산업의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A산업은 삼성전자 생산라인의 해외 이전으로 주문 물량이 감소하자 지난달 초 폐업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광주 하남산업단지, 첨단산업단지 등 곳곳에 모여 있는 삼성전자 협력업체 200여 곳은 ‘물량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 업체 대부분은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삼성전자 가전제품 부품을 만들어왔다.

첨단산업단지에 위치한 2차 협력업체 B산업도 이달 초 폐업 준비를 시작했다. B산업은 최근 몇 달 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 회사 대표는 “더 미루다간 밀린 인건비와 임차료, 전기요금 등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문을 닫기로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광주시 조사 결과 삼성전자의 해외 이전이 시작된 2011년부터 협력업체의 매출액, 영업이익 등은 연평균 8%씩 감소했다.

협력업체들은 업종을 전환하거나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D산업은 공기청정기 부품, I전기는 모니터 부품 사업에 각각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한 협력업체 대표는 “대부분 물량을 줄이거나 끊는다는 통보가 온 뒤 갑자기 다른 사업에 뛰어드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美-日 등 해외 자국 기업 U턴정책 잇달아

삼성전자는 협력업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광주시 및 광주 지역 경제단체들과 함께 ‘상생협의체’까지 꾸렸다. 일부 중소기업에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컨설팅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자체 생산하던 부품을 특정 기업에 일부러 아웃소싱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단기적 대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해외로 생산라인을 이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우호적인 투자환경을 만들거나 이미 이전한 사업장을 국내로 U턴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일본 등은 해외 생산라인을 가진 자국(自國) 기업의 본국 U턴을 위한 유인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의 일환으로 자국 기업 복귀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U턴 기업의 이전 비용 20%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설비 투자비용에 대한 세금을 2년간 감면해주고 있다. 미국 비영리 단체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는 기업 U턴을 통해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지난해에만 6만7000여 개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한국에 앞서 심각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겪었던 일본은 2000년대 초 일찌감치 U턴 정책을 폈다. 수도권 공장 설립을 금지하는 법규를 폐지하는 한편 U턴 기업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도 마련했다. 최근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멕시코나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던 물량 일부를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은 이런 정책이 맺은 결실이다.

이정기 전기통신연구원 스마트가전혁신지원센터장은 “정부 차원에서 U턴 기업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세금 감면뿐만 아니라 공장 이전 비용까지 지원하는 선진국 정책을 과감히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유명무실한 국내 U턴 지원 정책

국내에도 U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없는 게 아니다.

정부는 산업공동화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2013년 8월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최대 7년간 50∼100% 감면해주고, 자본재 수입에 대한 관세도 최대 5년간 50∼100% 감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국내 복귀 기업은 고작 76곳뿐이며 대기업은 한 곳도 없다. ‘완전 철수를 할 때만’ ‘중소기업인 경우에만’ 등 단서 조항들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나간 기업의 U턴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4·13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U턴 경제특구를 설치해 매년 50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국민의당도 장병완 의원이 나서 U턴한 국내 기업이 지역 산업단지에 입주할 경우 혜택을 부여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정치권이 내세운 U턴 기업 유인책은 일본 정부가 시행했던 것처럼 수도권에도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철폐와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원하겠다는 법은 있지만 제약조건이 너무 많아 기업들로서는 U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며 “게다가 경쟁국들에 비해 불리한 노동시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기업들의 국내 복귀는 이뤄지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규제개혁에 보다 속도를 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환경이 조성될 때만이 국내 대기업의 이탈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투자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광주=서동일 dong@donga.com /김창덕 기자
#u턴정책#규제#광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