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단산업단지에 위치한 2차 협력업체 B산업도 이달 초 폐업 준비를 시작했다. B산업은 최근 몇 달 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 회사 대표는 “더 미루다간 밀린 인건비와 임차료, 전기요금 등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문을 닫기로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광주시 조사 결과 삼성전자의 해외 이전이 시작된 2011년부터 협력업체의 매출액, 영업이익 등은 연평균 8%씩 감소했다.
○ 美-日 등 해외 자국 기업 U턴정책 잇달아
삼성전자는 협력업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광주시 및 광주 지역 경제단체들과 함께 ‘상생협의체’까지 꾸렸다. 일부 중소기업에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컨설팅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자체 생산하던 부품을 특정 기업에 일부러 아웃소싱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단기적 대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해외로 생산라인을 이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우호적인 투자환경을 만들거나 이미 이전한 사업장을 국내로 U턴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일본 등은 해외 생산라인을 가진 자국(自國) 기업의 본국 U턴을 위한 유인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의 일환으로 자국 기업 복귀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U턴 기업의 이전 비용 20%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설비 투자비용에 대한 세금을 2년간 감면해주고 있다. 미국 비영리 단체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는 기업 U턴을 통해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지난해에만 6만7000여 개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한국에 앞서 심각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겪었던 일본은 2000년대 초 일찌감치 U턴 정책을 폈다. 수도권 공장 설립을 금지하는 법규를 폐지하는 한편 U턴 기업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도 마련했다. 최근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멕시코나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던 물량 일부를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은 이런 정책이 맺은 결실이다.
이정기 전기통신연구원 스마트가전혁신지원센터장은 “정부 차원에서 U턴 기업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세금 감면뿐만 아니라 공장 이전 비용까지 지원하는 선진국 정책을 과감히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유명무실한 국내 U턴 지원 정책
국내에도 U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없는 게 아니다.
정부는 산업공동화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2013년 8월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최대 7년간 50∼100% 감면해주고, 자본재 수입에 대한 관세도 최대 5년간 50∼100% 감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국내 복귀 기업은 고작 76곳뿐이며 대기업은 한 곳도 없다. ‘완전 철수를 할 때만’ ‘중소기업인 경우에만’ 등 단서 조항들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나간 기업의 U턴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4·13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U턴 경제특구를 설치해 매년 50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국민의당도 장병완 의원이 나서 U턴한 국내 기업이 지역 산업단지에 입주할 경우 혜택을 부여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정치권이 내세운 U턴 기업 유인책은 일본 정부가 시행했던 것처럼 수도권에도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철폐와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원하겠다는 법은 있지만 제약조건이 너무 많아 기업들로서는 U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며 “게다가 경쟁국들에 비해 불리한 노동시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기업들의 국내 복귀는 이뤄지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규제개혁에 보다 속도를 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환경이 조성될 때만이 국내 대기업의 이탈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투자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광주=서동일 dong@donga.com /김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