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할인 취소 vs 가격 인상… 이 차이를 알아야 똑똑한 소비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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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지적 능력은 다분히 제한적이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리처드 탈러·리더스북·2016년)

최근 한 카드사는 장기 카드 대출(카드론)을 받는 고객에게 현금자동입출금기(CD·ATM) 이용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자가 “왜 수수료를 새로 부과하느냐”고 묻자 카드사 측은 “엄밀히 말하면 이용 수수료를 부과하는 게 아니라 이용 수수료 면제 혜택을 종료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똑같은데 왜 그 차이를 짚어 주는지 의아했다. 그 답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사람들은 추가 요금을 부담하는 것은 주머니에서 실제로 돈이 빠져 나가는 것이지만 할인받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기회를 놓치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가질 수 있지만 아직 소유하지 않은 것보다 이미 자기 자산의 일부가 된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부과하고자 하는 최고의 가격을 ‘정상가’로 설정해 둬야 한다”며 “할인 취소는 가격 인상만큼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45달러(약 5만4000원)짜리 라디오를 35달러에 살 수 있다면 10분 정도 운전해 먼 곳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495달러짜리 TV를 구입할 때는 10달러를 절약하기 위해 그 정도의 노력은 잘 들이지 않는다. 더블사이즈 침대 커버를 사기 위해 매장을 찾았더라도, 할인 폭이 더 크면 ‘쓸 수는 있으니까’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킹사이즈 침대 커버를 구입한다. 이런 모습은 유명한 심리학자조차 마찬가지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이콘·항상 경제학적으로 사고하는 인간)들만 살아가는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은 이처럼 비논리적이다.

베스트셀러 ‘넛지’ ‘승자의 저주’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탈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당신은 이콘입니까”라고 묻는다. 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자주 그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카드사의 그 직원은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우리가 이콘이 아님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할인#가격인상#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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