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경험을 파는 백화점… 남성 끌어들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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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사용자 경험혁신 사례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점포 간 거리를 넓게 배치하고 방문객들이 다양한 체험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사진은 판교점 내부. 현대백화점그룹 제공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점포 간 거리를 넓게 배치하고 방문객들이 다양한 체험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사진은 판교점 내부. 현대백화점그룹 제공
온라인·모바일 쇼핑 활성화와 다양한 유통채널의 등장으로 19세기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해온 백화점업은 전 세계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경만 하고 최저가 쇼핑몰 등 다른 유통채널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이른바 ‘쇼루밍(showrooming)’ 현상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백화점은 더 이상 물건을 구매하는 곳이 아닌 ‘구경하는 곳,’ 즉 ‘쇼룸’이 돼 버렸다.

한국의 백화점들도 예외가 아니다. 고객들의 구매단가 하락, 수익성 악화, 그리고 ‘백화점’이라는 점포명이 주는 ‘고급’과 ‘세련됨’의 이미지 약화는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2015년 8월 말 경기 성남시 판교에 문을 연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개장 넉 달 만에 놀라운 성과를 내면서 기존 백화점업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개장 100일 만에 2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국내 백화점의 초기 매출 신기록이다. 국내 최대 수준의 식당가와 식료품점을 지하에 꾸린 효과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이다.

또 일반적인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 20∼40대 고객의 비중은 40% 내외인 반면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같은 연령대의 비중이 70%가 넘는다. ‘젊은 백화점’이고 ‘2040세대’의 명실상부한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판교 지역 사람들만 찾는 것도 아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100일간 판교점을 방문한 고객 수는 약 1000만 명, 구매 고객 수는 400만 명인데 이 중 절반은 10km 밖의 지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DBR 193호(1월 2호)에 실린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사용자 경험 혁신’ 사례 연구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백화점, 상품이 아니라 경험을 팔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백화점의 쇼룸화’에 맞서기보다 그 현상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기로 했다. 발상을 완전히 전환한 것이다. 기존 중형 백화점 3개 점포를 합친 공간을 확보한 상황이기에 많은 걸 해볼 수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여성들이 최대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점포와 점포 사이 공간을 기존 백화점보다 최대 1.5배 가까이 늘려 놨다. ‘체험형 매장’도 대폭 확대했다. 식품매장에서 ‘시식’을 통해 구매를 촉진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다른 제품도 체험과 경험을 통해 구매를 촉진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체험과 구매가 동시에 이뤄지는 모델’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플레이울’이라는 매장에서는 매일 세 번 뜨개질 수업이 진행된다. 평일엔 6∼7명, 주말엔 10명까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 매장에서 실과 도구를 구입해서 함께 뜨개질을 배우는 광경이 펼쳐진다. 유명 가죽공방인 ‘토글’도 유치했다. 절반 정도 완성된 제품을 팔고, 이를 구입한 고객들이 그 자리에서 자신만의 가죽지갑과 명함지갑을 만들 수 있도록 강좌를 열었다. 조향과 한지공예, 꽃꽂이를 배우고 구입할 수 있는 점포, 직접 빵을 만들어서 사 가는 빵집, 자전거 튜닝 아이템을 사서 직접 경험해 보는 매장 등을 유치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매장 직원과 고객들의 친밀도가 증가해 고정 고객이 급증했고, 주 1회 이상 방문하는 고객이 30% 이상 늘었다. 그리고 자신이 구입한 재료나 제품으로 활동을 하는 고객들은 아예 ‘커뮤니티’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 ‘백화점의 적’ 남성을 우군으로 만들다

유통업계에는 ‘백화점의 최대 적은 짜증 내는 남편(남친)’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 상황 다음으로 남자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길어지는 쇼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당수 남성은 장시간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이 각 층에 ‘남자를 위한 공간’을 만든 이유다. 1층에는 유명 음향기기·스피커 매장이 있고 2층, 3층으로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남성 취향의 전자기기나 패션 매장이 나온다. 여성이 좀 더 구경하고 쇼핑을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남성들은 “여기서 나는 이걸 보고 있을 테니 천천히 다녀오라”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유도했다. 5층은 다른 백화점에 없는 ‘패밀리 존’으로 꾸몄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전 연령층을 상대로 한 스포츠웨어를 중심으로 수입 남성·여성 의류매장과 이벤트몰을 마련했다. 장난감 피규어숍에서 아들과 함께 상품을 구경하고 구매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시간만큼 여성은 완전한 해방감 속에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오직 남성만을 위한 공간도 존재한다. XTM존과 바버숍(고급 이발소)이다. 남성전문채널 XTM과 협력해 아예 5층에 스포츠 경기를 보고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바버숍은 ‘미용실 가기에는 멋쩍고, 사우나 이발소는 이용하고 싶지 않은 남성들’을 공략했다. 이발과 면도를 해주며 목과 어깨의 뭉친 곳도 풀어준다. 개방된 공간에 아주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 놓아 서비스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충분한 가치를 느끼는 고객이 적지 않다. 그 공간 안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과시’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 ‘백화점에 대한 충성도’를 형성하다

각종 체험과 ‘대접’은 고객들에게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바버숍에서, XTM존에서 대접받은 남성들, 온갖 체험형 매장에서 함께 뜨개질과 제빵 기술을 배우며 커뮤니티를 형성한 여성들은 ‘나는 이곳에 속한 사람이고, 이 정도 서비스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쇼핑하고 인생을 즐기는 사람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고 ‘나를 위한 투자’, ‘내 아이를 위한 투자’에도 관대해지면 백화점의 매출도 올라간다.

판교점 1층에 들어선 명품 매장 중 한 곳은 전체 현대백화점 유통채널에서 크리스마스 매출 1위를 기록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에서 ‘그저 싸게 구입하는 것’ 이상의 만족감을 느낀 고객이 많았다는 의미다. 최지환 현대백화점 판교점 판매기획팀장은 “현대백화점 판교점만의 독자적인 브랜딩 활동을 하는 이유는 ‘나는 이곳에 속한 사람이다. 이걸 누릴 수준이 되는 사람이다’라는 인식과 백화점에 대한 충성도를 고객에게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고객들에게 ‘강렬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고, 남성을 ‘쇼핑의 걸림돌’에서 ‘적극적 주체’로 바꿨으며, ‘백화점 자체에 대한 충성도’를 만들어 고가 제품에 대한 저항을 없앴다. 발상의 전환, 고객 변화에 맞서지 않고 그 흐름에 올라탄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현대백화점#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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