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인류구원을 고민하는 이기적 존재, 그 이중성의 말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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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불멸은 없다, 그렇다면 선행도 없고, 따라서 모든 것이 허용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스토옙스키·민음사·2010년) 》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마지막 장편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문학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주인공들을 만들었다. 두 주인공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누구든 이 책을 읽고 나면 둘 중 한 사람을 닮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하나는 카라마조프 가문의 둘째 아들인 이반이다. 유럽에서 유학하고 러시아로 돌아온 그는 “고통받는 이웃을 놔두고 혼자서만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종교를 거부하는 휴머니스트다. 동시에 그는 “어떻게 자기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고백하는 냉소주의자다. 그는 전 인류의 행복과 구원을 두고 고민하지만, 실상 자기 옆에 있는 어떤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이웃에게서는 혐오와 증오만을 느낀다. 결국 허무주의자 이반은 대의를 위해서는 살인을 포함한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다른 한 명은 이반의 이복동생인 알료샤다. 견습 수도사인 그는 이반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알료샤는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또 모든 타인을 사랑한다. 소설은 이반으로 대표되는 허무주의와 알료샤로 대표되는 기독교적 휴머니즘 사이의 긴장 속에 전개된다.

대의를 가장한 채 자신과 뜻이 다른 무리를 사회에서 쓸어내려 하는 ‘이반형(型) 인간’은 오늘날에도 많다. 굳이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리즘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극단적 정치 성향을 띤 인터넷 커뮤니티는 반대파에 ‘…종자’(사람을 식물에 빗대 비하하는 말) ‘…충’(사람을 벌레에 빗대 낮춘 말) 등의 낙인을 찍어 ‘극혐(극히 혐오스럽다)’의 대상으로 삼는다. 특정 집단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었던 이반은 결국 자신이 벌레처럼 여기던 호색한 아버지를 살해(혹은 그것을 방조)함으로써 신념을 실현한다. 하지만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한 채 미치광이로 전락하고 만다. 현대의 이반들이 곱씹을 만한 결말이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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