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8>권동칠 트렉스타 사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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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혁신 27년… 그가 만들면 최초가 된다

권동칠 트렉스타 사장이 트레킹화에 들어 있는 여러 첨단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권동칠 트렉스타 사장이 트레킹화에 들어 있는 여러 첨단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김상철 전문기자
“세원에서 나와 신발회사를 세우세요.”

영국인 하이텍 한국지사장은 일감을 줄 테니 독립하라고 제의했다. 영국 등산화 전문기업 하이텍은 세원의 거래처였다. 세원은 세계적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로 아식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 신발을 만들어 납품했다.

“고맙지만 노(No).”

동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입사한 세원에서 특진을 거듭해 2년 6개월 만에 영업 총책임자가 되는 등 잘나가고 있었다. 몇 차례 거절하자 하이텍 지사장은 회사 설립에 쓰라며 30만 달러를 내놓고 재촉했다.

고민 끝에 수락했다. 부산 사상구 삼락동 공장을 빌려 생산 설비를 설치했다. 100년에 한 번 온다는 길일을 택해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8분 ‘동호실업’ 문을 열었다. 질 좋은 등산화를 20% 이상 싼 가격에 OEM으로 공급하자 하이텍은 주문량을 늘렸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이사 사장(60)이 독립하던 27년 전 얘기다.

1993년 미국 스키 전문회사 K2의 직원들이 찾아와 새 인라인스케이트를 개발하자고 제의했다. 당시 인라인스케이트 부츠는 플라스틱이어서 딱딱하고 무겁고 공기가 안 통해 불편했다. 큰돈을 쏟아부었지만 실패의 연속. 인라인스케이트는 볼트, 베어링 등이 들어가는 특수화로 제조 공정이 일반 신발과 달랐다. 직원들은 지쳐 포기하자고 했다.

“해결책은 있다. 아직 못 찾았을 뿐이다.”

권 사장은 직원들을 격려했다. 8개월 만에 신소재와 새 가공법으로 마지막 난제였던 발목 보호 문제를 해결했다. 가볍고 통풍이 잘되고 발이 편한 소프트 인라인스케이트를 개발하자 K2는 즉시 계약을 맺었다. 특허를 받은 인라인스케이트는 세계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주문량을 다 소화할 수 없어 1995년 중국 톈진에도 공장을 세웠다.

민주화 영향으로 인건비가 치솟자 유명 브랜드들이 해외로 하청기지를 옮겼다. 폐업하는 신발업체가 속출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신발은 사양산업이 될 수 없다.”

권 사장은 1994년 자체 브랜드 ‘트렉스타(Treksta)’를 론칭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고 오더가 끊기는 위험이 있지만 세계 최고 신발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등산화를 신었더니 발이 까지고 불편했다는 얘기를 듣고 새 등산화 개발에 나섰다. 당시 가죽 등산화는 군화처럼 딱딱하고 무거웠다. 5개월 만에 나이키 운동화를 접목한 신개념 등산화를 개발했다. 등산용품점은 “이게 등산화냐”며 받아주지 않았다. 인근 산을 찾아 등산객에게 무료로 신어 보게 했다. 가볍고 편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판로가 열렸다.

1997년 무게가 290g인,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등산화를 출시했다.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끈 등산화는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100만 족 OEM 주문을 받았으나 자체 브랜드를 키우려고 거절했다.

“모든 신발은 잘못돼 있다.”

현재 신발을 미래 시점에서 보면 잘못됐거나 부족한 제품일 수 있다. 그래서 권 사장이 내놓는 신제품과 신기술은 여러 나라에서 특허를 받을 만큼 혁신적이다.

2005년 자동차 서스펜션 원리를 적용해 울퉁불퉁한 지면을 밟아도 발목이 거의 흔들리지 않고 충격을 흡수하는 IST 기술, 2006년 유리섬유로 빙판 미끄러짐을 줄인 ‘아이스 그립’ 신발창, 2010년 발의 굴곡대로 신발을 만드는 ‘네스핏’ 기술을 개발했다. 3D 스캐닝한 2만여 명의 데이터로 만든 네스핏은 발 모양의 세계 표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는 손을 쓰지 않고 신발 뒤축 장치로 끈을 매고 풀 수 있는 ‘핸즈프리’를 출시했다. 이 신발은 중국에서 열린 아웃도어 스포츠용품 박람회에서 황금상 및 올해의 아시아 제품 대상을 받았다.

고비도 있었다. 자리가 잡힐 즈음인 1992, 1993년 공장에 3차례 불이 나 출고를 기다리던 신발과 설비를 태워 큰 피해를 입었다. 2000년대 들어선 인라인스케이트 열풍이 사그라지면서 많은 재고를 떠안아 수백억 원의 손실을 봤다. 그러나 기회는 또 온다는 생각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트렉스타는 현재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한다. 아웃도어 신발 매출 아시아 1위, 세계 14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권 사장은 신발산업협회장으로 세계 최대 신발 수출국 명예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발의 경혈을 자극해 치매를 예방하는 신발, 늘 시원한 신발 등을 만들어 인류 건강에 기여하는 신발왕이 되는 게 그의 꿈이다.

김상철 전문기자sckim007@donga.com
#권동칠#트렉스타#신발 혁신 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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