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명함 대신 창업” 직장인 엑소더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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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명함이 주는 만족감보다 도전에 대한 갈증이 더 컸다. LG전자 특허센터에서 잔뼈가 굵은 조은형 씨(39)는 지난해 사표를 냈다. 입사 후 11년. 조 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LG전자가 출원한 특허만 350여 개에 이를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LG전자 입장에서는 뼈아픈 인력 손실이었다. 조 씨는 글로벌 경쟁사들과 특허 분쟁을 겪을 때는 물론이고 표준특허 개발, 미래 디바이스 사용자 경험 연구 등 특허센터 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 씨가 택한 길은 ‘창업’. ‘이노프레소’라는 스타트업을 차려 키보드 자판이 마우스패드 역할을 하는 휴대형 키보드 ‘모키(Moky)’를 개발했고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인디고고에서 8만 달러(약 9000만 원) 투자를 유치할 정도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대기업 명함을 버리다

하드웨어 기반 스타트업에 공간 및 장비, 운영 노하우, 투자자 연계를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 N15를 공동 창업한 4명도 삼성전자, LG 등 대기업을 포기하고 ‘창업’을 택했다. N15 최수리 운영총괄이사는 “대기업 이름값과 안정적인 월급봉투를 포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더 넓은 세상에서 뛰어 보고 싶다는 갈증이 컸다”고 말했다.

국내 벤처 및 스타트업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대기업 명함을 버리고 창업을 택하는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돈이 몰리고, 정부와 민간 기업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잇따라 생기며 창업이 쉬워진 덕분이다.

정부 TIPS 프로그램(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프로그램)에 선정된 스타트업 78개 구성원만 살펴봐도 대기업 출신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체 구성원 237명 중 삼성 출신만 30명이 넘고 LG(9명), SK(7명), 네이버·다음카카오(17명), 구글·애플 외국계 기업(7명) 등 출신도 다양하다.

○ 속 타는 기업들

기업들은 창업 열풍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처지다. 국내 대기업 A사 인사담당자는 “창업을 위해 퇴사하는 인력 대부분이 업무 관련 교육을 마치고 한창 일해야 하는 ‘허리층’이라 타격이 크다”라며 “대기업 특성상 조직원들이 갖는 도전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데 한계가 있어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퇴사한 직원이 성공할 경우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상품성 높은 아이디어를 키우지 못한 정체된 조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대기업 입장에서는 걱정거리다.

창업 후 이전 직장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기도 한다. 스타트업 쿠쿠닥스는 이유호 대표를 비롯해 창업멤버 4명 모두 한글과컴퓨터(한컴) 크라우드 오피스팀에서 함께 근무하다 퇴사했다. 한컴은 쿠쿠닥스가 한컴 내부 기술 및 정보를 빼돌린 뒤 창업을 했다며 쿠쿠닥스를 영업비밀보호 위반, 저작권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퓨처플레이 한재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창업이 활발해져 곳곳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대기업들도 스타트업의 도전을 지원하고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동일 dong@donga.com·김호경 기자
#대기업#창업#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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