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먼 산만 보는 회의… 몰입의 멍석 깔아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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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Solution]성과를 이끄는 전략

추운 겨울날 동물원을 찾았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백호 세 마리가 바위 위에 앉아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위 위에서 흰 입김을 내뿜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백호를 보니 ‘백두산 호랑이라 추위를 안 타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번엔 사자가 나타났다. 이 녀석 역시 사람들이 사진 찍기 딱 좋은 자리에서 자세를 잡고 앉는다. 대체 동물들에게 어떤 훈련을 시켰기에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관람객들을 맞아 주는 걸까? 사파리 투어가 끝나자마자 가이드에게 달려가 물었다. “대체 무슨 훈련을 어떻게 시킨 겁니까?” 가이드의 답이 걸작이다. “훈련 안 시켜요. 열선 깔린 바위를 만들어 줬더니 알아서 올라가는 겁니다.”

이 가이드의 대답은 비단 사육사들에게만 유효한 답변이 아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는 통찰이 들어 있다. 사람의 행동은 누가 억지로 시킨다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간의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스스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조직에서의 몰입도 마찬가지다. 조직원들에게 업무에 몰입하라고 무조건 닦달할 게 아니라 몰입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먼저다. 제 아무리 자율성이 뛰어나고 전문성을 갖췄으며 주인의식까지 넘쳐나는 조직원들이라고 해도 몰입을 위한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면 그 효과는 반 토막 날 수밖에 없다.

○ 회의에서 각자 역할부터 명확하게

리더들이 업무 시간의 절반 이상을 쏟는 일이 바로 회의다. 임원의 호출 때문에, 팀장들 간 업무 분장을 하느라, 팀원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 말 그대로 회의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걸 탓할 순 없다. 회의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고, 실행 계획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회의감(懷疑感)’이 생기는 회의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직원들의 몰입을 돕는 회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참석자들이 각자의 역할 인식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다들 ‘먼 산’을 보고 있는 회의가 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정보 제공자가 없을 때다. 자료가 없으니 판단을 할 수가 없다. 회의 시간에 고민해야 할 안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줘야 한다. 둘째, 의사 결정권자가 없을 때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회의 시간에 목청껏 얘기해도 그걸 들어 줄 사람이 없으면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셋째, 실행할 사람이 없을 때다. 회의는 일의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할 사람이 회의에 없다면 하나 마나 한 얘기가 나올 확률이 높다. 회의 전에 이런 세 가지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지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먼 산을 보는 사람의 관심을 붙잡을 수 있다.

○ ‘3-Room’ 회의 기법 통해 아이템 걸러내야

회의를 하다 보면 가끔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다. “아이디어 없느냐?”는 호통부터 “그건 말이 안 되잖아!”라는 비난, 심지어 “구체적인 방법이 없잖아!”라는 비아냥거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너무 다양한 사람이 회의에 들어와서다. 참석자가 많다는 게 아니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누구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어떤 사람은 시장 동향을 읽는 눈이 좋다. 또 어떤 이는 현실 감각이 매우 높다. 이런 사람들이 한번에 회의를 하니 제대로 진행이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이를 막는 방법이 회의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것이다. 회의 참석자를 제한하라는 말이 아니다.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는 특정 관점에서만 생각하도록 회의 규칙을 정하라는 의미다. 이른바 ‘3룸(Room)’ 회의 기법이다. 방법은 이렇다.

첫 번째 시간은 ‘몽상가(Dreamer)’의 방이다. 이 방의 규칙은 간단하다.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상상하라. 단, 비판은 금지다. 예산이 모자란다든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일단 접어둔다. 하고 싶은 얘기를 다 쏟아내는 게 중요하다. 아이디어가 충분히 나왔다고 생각되면 두 번째 방으로 간다. 이곳은 ‘현실가(Realist)’의 방이다. 여기선 실현 가능성만 검토한다. 예산은 얼마나 필요하고, 시장성은 있는지, 경쟁사 현황은 어떠한지 등의 질문을 한다. 이를 통해 첫 번째 방에서 나왔던 안들 중 많은 것이 걸러지고 ‘될 법한 것들’만 남는다. 그럼 마지막 세 번째 방으로 가면 된다. 바로 ‘비평가(Critic)’의 방이다. 여기서는 ‘무조건’ 트집을 잡는다. 사소한 문제라도 다 지적해 위험 요소를 점검한다. 이 세 개의 방을 다 통과해 살아남은 안건만 실행 아이템으로 결정한다. 이 절차는 실제 월트디즈니에서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거치는 회의 프로세스다. 여기서 살아남아 ‘겨울왕국’도, ‘빅히어로’도 만들어졌다.

○ 지시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조직에서 대부분의 일은 ‘지시’에서 시작해 ‘보고’로 끝난다. 그런데 많은 조직의 리더들을 관찰하다 보면, 지시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 우선 이 일이 ‘왜(Why)’ 필요한지에 대해 잘 설명하질 않는다. ‘언제까지(When)’에 대한 정보를 명확하게 제공하지 않을 때도 많다. 결과물의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How)’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야기 안 할 때가 있다. 부서원이 끙끙대며 일을 해 왔는데 “뭘 이렇게까지 해 왔어. 보고서 한 장이면 되는데…”라고 말하는 리더들이 종종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때는 바로 이 세 가지 측면, 즉 ‘왜,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라는 세 가지 질문에 입각해 지시해야 한다. 즉, 어떤 목적에서 이 일이 필요한지에 대해 분명히 밝혀 주고 일의 마감 시간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그냥 ‘수요일’이 아니라 ‘수요일 오전 10시’, 혹은 ‘월요일 회의 때 중간보고 후 최종 마무리는 화요일 퇴근 시간까지’라고 말해야 한다. 한 장으로 끝내도 될 보고서에 쓸데없이 과잉 노력을 투입하지 않도록 일의 수준이나 방법도 사전에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

부서원에게도 요구되는 의무도 있다. 상사가 시킨 일을 하다 문제가 생기면 ‘즉각 보고’가 원칙이다. 스스로 해결하려다 일을 키우느니 바로 보고하는 게 낫다. 그렇다고 무작정 찾아가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요”라고 투정해선 안 된다. 본인이 생각하는 해결책을 함께 제안해야 한다. 일을 받았으면 그만큼 고민을 하는 게 아랫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상사의 피드백을 구해야 한다. 리더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는 없는지, 과거 비슷한 해결 경험은 없는지 물어 자신의 해결책을 보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철환 HSG 휴먼솔루션그룹 성과관리연구소장 chhan@hs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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