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산행기] 상고대 눈부신 '바람의 화원'에서 노닐다

  • 동아경제
  • 입력 2014년 12월 18일 1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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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얼어 죽지는 않을까요? 옷은 어떻게 입고 가야해요? 신발은요?”

며칠 전부터 후배의 질문이 수화기 너머로 쏟아져 들어왔다. 심지어 아웃도어 매장에서 옷을 하나하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보내며 하나만 골라달란다. 이번 산행에는 이런 후배가 두 명이나 있었다.

주말 해발 1439m 높이의 소백산 비로봉을 동료 기자들과 오르기로 했다. 산행에 참가하는 인원은 모두 8명. 등산 초보자도 있고 전문가 수준의 숙련자도 있다. ‘겨울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산’ 소백산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다가도, 한편으론 초보자들이 낙오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미리 걱정해봤자 뭐하나’ 결국 편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올라가다 도저히 힘들면 돌아서 내려오리라. 꼭 완주만이 등산은 아니니까.’

코스는 희방사매표소를 출발해 희방폭포와 연화봉, 제1연화봉, 비로봉, 양반바위를 거쳐 삼가매표소로 하산하는 약 14.7km로 잡았다. 짧은 코스도 있지만, 소백산 등산의 꽃인 연화봉~비로봉 능선을 빼놓을 수 없어서 조금 무리해(?) 일정을 짰다. 보통 6시간30분이 걸리는 코스지만, 매서운 한파에 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에는 속도가 늦어져 최소한 1~2시간은 더 잡아야 한다.

출발 전 사전 조사를 해보니 소백산 봉우리들은 벌써 영하 20도를 오르내리고 있단다. 여기에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체감 온도는 영하 25도를 훌쩍 넘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원래 한 겨울 비로봉은 채 3분을 서있기 힘들 정도로 살을 에는 칼바람으로 유명하다. 기사를 쓰는 지금 또 다시 생각해봐도 뼛속까지 시원해진다.

이런 날씨에는 무엇보다 장비가 중요하다. 특히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옷을 따뜻하게 입되 몸에 땀이 흐를 정도로 많이 껴입으면 안 된다. 땀은 겨울산행에서 무엇보다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겨울산행에서 기자는 주로 맨살에 동계용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플리스재킷을 걸친 뒤 방수와 투습 기능을 갖춘 방풍 재킷을 덧입는 패턴으로 옷을 입는다. 만약 높은 산이나 장거리 산행이라면 여기에 모 소재 셔츠와 다운조끼를 추가한다. 조끼는 산행 중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재빨리 벗어서 배낭에 넣을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아주 추운 겨울에서 꼭 챙겨야할 옷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중량급 다운재킷이다. 능선이나 정상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으로부터 체온을 지키고, 휴식이나 식사시간에 몸을 보호하려면 다운재킷은 필수다. 가끔 출발부터 다운재킷을 입는 사람도 있은데 조금 올라가다가 땀이 나면 바로 벗어서 배낭에 넣는 게 좋다. 과도한 땀은 체력 손실과 저체온증을 불러와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옷 입는 패턴을 약간 달리해 플리스재킷 대신 얇은 패딩을 선택했다. 다운재킷도 모자가 있고 보온과 방투습이 강화된 중량급(헤비) 제품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테스트를 겸해 선택한 다운재킷은 컬럼비아의 ‘하이킹 솔로’다. 하이킹 솔로는 컬럼비아의 첨단 보온 및 방·투습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으로 기후 변화가 심한 겨울 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또한 야상 형태의 디자인이라 평소 도심에서 입어도 잘 어울린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서울의 쌀쌀한 새벽공기를 뚫고 차로 2시간30분을 달려 경북 풍기 삼가매표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간단히 몸을 풀고 첫 번째 목적지인 연화봉(1383m)으로 향했다. 가파른 경사로 4.4km를 약 2시간20분만에 올라야한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이지만, 등산로가 아기자기하고 나무가 바람을 막아줘 아늑하다.

경사로를 힘들게 올라가 어느덧 연화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멀리서부터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봉우리에 다가갈수록 ‘우우~웅’하는 소리가 커졌다. 묵묵히 옆을 지키던 후배가 “이게 무슨 소리예요?”라고 묻는다. 바람소리라고 말해주니 “에이 설마!” 믿지 않는 눈치다. 하긴 바람소리 치고는 너무나 공포스럽게 들린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배낭 깊숙이 넣어뒀던 다운재킷을 꺼내 입었다. 후배에게도 옷을 더 입으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몸이 뜨겁게 데워져서 괜찮다”며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 아직 젊으니까 소백산 칼바람을 온몸으로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조금만 견뎌봐라.’

예상대로 연화봉 정상의 바람은 매서웠다. 맨살에 그대로 닿으면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다. 후배는 채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다운재킷을 꺼내 입었다. ‘짜식 진즉에 선배 말씀을 들어야지.’

스마트폰을 꺼내드니 작동불능. ‘온도가 너무 낮으니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온도는 영하 19도, 체감온도는 최소한 영하 25도는 넘을듯하다. 하지만 몸은 크게 추위를 느끼지 못하겠다. 중량급 다운재킷 덕분이다. 하이킹 솔로의 겉감은 컬럼비아에서 자체 개발한 옴니테크(Omni-Tech)로 만들었다. 이 소재는 방·투습 기능을 갖춰 눈, 비가 잦은 겨울등산, 트래킹, 캠핑 등 아웃도어에 적합하다. 봉제선을 따라 물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일종의 방수 테이프를 붙이는 ‘심실링’ 처리를 했다.

연화봉에서 내려와 제1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으로 향했다. 이 구간은 나무가 전혀 없어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차가운 바람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다운재킷 안으로는 바람이 스며들지 못했다.
하이킹 솔로는 보온력이 뛰어난 구스다운을 솜털 90, 깃털 10의 비율로 사용했다. 솜털의 비율이 높을수록 공기 함유량이 많아 보온성이 뛰어나다. 안감은 컬럼비아가 개발한 체온, 체열 반사 소재인 ‘옴니히트’를 적용했다. 몸에서 내뿜는 열기를 반사해 보온성을 높여주는 기술로, 은색점(Silver dot)은 체온을 반사하는 역할을 한다.

겨울 소백산은 연화봉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방향이 등산하기 훨씬 수월하다. 바람을 등지기 때문이다. 만약 거꾸로 걸으면 바람 때문에 눈 뜨기도 힘들다.

제1연화봉에 도착하자 일행 8명 중 4명만 보였다. 4명은 뒤로 한참을 처졌다. 하지만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몸이 식어서 자칫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따라올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춰가며 천천히 비로봉으로 향했다.

땀이 차지 않게 틈틈이 쉬어가며 비로봉에 올랐다. 몸이 뜨거워지면 잠깐씩 지퍼를 내려 열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재킷은 중량급이지만 부피가 크지 않고 몸에 착 달라붙어 움직임이 둔하지 않았다. 특히 목 뒷부분에 부드러운 소재의 천을 덧대 맨살에 닿아도 거부감이 없다.

비로봉 바로 직전 가파른 계단을 한발 한발 오르자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마지막 고비다. 속도를 조금 더 줄였더니 어느덧 뒤에 처졌던 4명도 대열에 합류했다. 최후의 힘을 짜내 비로봉 정상에 오르니 남녀 2명이 기념촬영을 한 뒤 재빠르게 하산 길에 오른다. 봉우리에는 우리 일행을 빼면 아무도 없다.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도 잠시 칼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들었다. 내렸던 지퍼를 다시 올리고 후드를 뒤집어썼더니 한결 났다.

기념촬영을 위해 후배가 DSLR 카메라를 꺼냈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작동을 멈췄다. 비로봉 정상에서 찍을 1장의 사진을 위해 무거운 DSLR을 힘들게 메고 올라왔는데, 너무도 속상한 순간이다. 아쉽지만 콤팩트 카메라로 인증 사진을 대충 찍고 서둘러 하산 길에 올랐다. 정상에 머문 시간은 대략 3분 남짓. 희방사매표소에서 비로봉까지 점심시간을 포함해 5시간10분이 걸렸다. 예상했던 시간대다. 낙오할까봐 걱정했던 동료들을 정상에서 보니 얼굴에 성취감이 가득하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바람이 없는 곳에서 하이킹 솔로 다운재킷을 벗었다. 전체적으로 톤 다운된 블루 계열의 색상이 세련된 느낌이다. 퍼(Fur)를 붙인 후드는 비로봉 칼바람을 잘 막아줬다. 가슴에 2개의 작은 주머니는 립스틱이나 손수건 등 소품을 넣을 수 있어 등산 내내 편리했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를 끄떡없이 막아줘 고맙다. 재킷을 둘둘 말아 배낭에 넣고 다시 얇은 패딩과 방풍 재킷을 꺼내 입었다. 2시간여 걸린 하산 길은 바람 한 점 없었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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