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이 외국인 人材 눈에는 좀비월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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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전문인력, 한국行 꺼려… 고급두뇌 유치 비상

“A기업은 좀비월드 같다. 직원들이 아무 생각 없이 회사를 떠돈다.”

“B기업 직원들은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근무 내내 감옥에 있는 느낌이다.”

“C기업은 군대다. 상사가 말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유를 묻거나 질문할 수도 없다.”

미국 취업 정보 사이트인 ‘글래스도어(www.glassdoor.com)’에는 한국 기업을 신랄하게 비판한 외국인들의 글이 많다. 한국 기업을 좀비월드나 감옥, 군대로 빗댄 용어 외에도 할 일도 없는데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야근 문화를 꼬집어 ‘책상 데우기(desk warming)’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전문기술이나 다양한 경력을 가진 외국인 전문 인력들이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기를 기피하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인력 중 전문 인력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6일 ‘외국인 인재 유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 외국인 근로자 중 전문 인력 비중은 12.2%로 영국(47.4%) 등 유럽연합(EU)뿐 아니라 멕시코(51.9%), 뉴질랜드(45.8%) 등에 비해서도 크게 뒤처져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전문 인력이란 연구교육 분야 취업자에게 주는 E1∼7 취업비자를 갖거나 외국계 기업 한국법인 대표, 기술력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 등을 포함한다.

○ 외국인 전문 인력은 국제기구와 대학도 꺼려

지난해 12월 인천 송도신도시에서 출범한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통상 국제기구는 전 세계적으로 고급 인력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지만 GCF는 수준급 고급 인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는 국제기구로서 고급 인재들이 많이 지원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원자가 적어 원서접수 기간을 연장하기까지 했다. 정부 관계자는 “설립 초기여서 지원자들이 적은 것도 영향을 끼쳤지만 한국 근무에 매력을 느끼는 선진국 출신 외국인이 적은 데다 서울이 아닌 인천이라는 점도 핸디캡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대기업이나 정부기관뿐 아니라 대학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는 201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를 ‘노벨상 수상자급 석학 유치사업’의 일환으로 연봉 15억 원의 조건에 교수로 임용했다. 하지만 사전트 교수는 당초 예정 임기의 절반만 채운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서울대 측에서는 부인했지만 학계에서는 사전트 교수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세계적인 석학을 유치하려면 가족들이 생활하기에 좋은 환경까지 대학이 세심하게 배려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직 미흡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아시아권 인재는 한국 선호

외국인 전문 인력이 한국 생활을 기피하는 것은 여전히 불편한 의사소통, 자녀 교육환경 등 주거환경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또 남북 대치 상황도 일부 외국인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특유의 조직문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헤드헌터 A사 임원은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지만 한국 본사뿐 아니라 해외 법인에서도 한국식 조직문화를 견디지 못한 고급 인재가 단기간에 퇴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유학생 규모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5만7244명에 이르던 외국인 유학생은 지난해 4만9762명으로 줄었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유학생이 줄어드는 것은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남아 연구를 하고 구직활동을 할 잠재적인 외국인 전문 인력이 감소한다는 것으로 장기적인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보고서에서 아시아 출신 전문 인력이 2009년 이후 연평균 12.9%씩 증가하는 등 중국과 동남아 출신 고급 인재는 한국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전 선임연구원은 “지리적으로 거리가 먼 미국이나 유럽, 껄끄러운 역사적 관계가 있는 일본보다 한국을 선호하는 아시아권 인재가 적지 않다”며 “특히 한류 현상으로 한국 거주를 선호하는 아시아 인재가 많다는 점은 고급 인재 유치 전략 수립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대기업#외국인 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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