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피해 트라우마에… 中企 74% “換헤지 안하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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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율하락으로 마진 급락
2008년 타격 경험에 환율관리 포기, 대부분 원가절감으로 임기응변
전문가 “미리 대비해야 손실 막아”

중소의류수출업체 아산트레이딩 정오채 대표는 요즘 환율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선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상반기 평균 1103.3원에서 올해 상반기 1049.8원으로 53.5원 떨어졌다. 똑같이 1달러만큼 수출해 원화로 환전했을 때 손에 쥐는 돈이 지난해보다 53.5원 줄어든 것이다.

“앞으로 계속 환율이 떨어질 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은행에서 환헤지 상품을 권하지만 믿을 수가 없어서 가입을 안 하고 있어요.”

정 대표는 2007년 당시 주거래 은행이었던 신한은행에서 권유를 받고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환율이 오르면서 27억여 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후 이 회사는 환헤지를 전혀 하지 않고 있어 환율 변동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 환리스크에 손놓은 중소기업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수출중소기업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많은 기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국내 수출기업들을 덮쳤던 ‘키코 트라우마’에 갇혀 환위험 헤지 상품에 전혀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정식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사무처장은 “환율 하락으로 수출기업들의 피해가 막대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키코에 대한 쓰린 기억 때문에 환헤지를 안 한다”며 “마른 수건 짜듯 원가를 절감하며 간신히 환율 하락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6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출중소중견기업의 74%가 환위험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부품을 납품하는 부전전자는 수출기업은 아니지만 달러로 대금을 받아 환율 하락의 직격탄을 입었다. 키코로 200억 원대 손실을 봤다는 부전전자의 한 임원은 “해외에도 공장이 있는데 물건을 팔아 받은 달러를 환전을 하지 않고 그대로 해외 공장에 보내는 방식으로 환변동 위험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 외면에 답답한 은행

은행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외환은행 중소기업글로벌자문센터 김동제 차장은 “키코로 피해를 본 회사나 주변에서 이를 보고 들은 기업들은 환헤지 상품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며 “대표적인 환헤지 상품인 선물환은 미래의 환율을 현재 환율로 고정시켜 거래하는 것일 뿐 키코 같은 통화옵션상품과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하지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중소기업은 평소에 환위험을 관리하기보다는 환율이 오르면 이익을 얻고, 떨어지면 손실을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환헤지 전문가들은 환변동 폭이 클 때보다 환율이 안정적으로 움직일 때 미리 환헤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IBK기업은행 자금운용부 전정준 차장은 “최근 환율이 떨어지면서 환헤지 상품에 대한 문의가 급증했다”며 “평소 환위험에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는 기업들이 환율이 떨어지면 그제야 문의해오지만 이미 환율이 떨어진 상황에서는 환헤지 효과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중소서민금융 소비자보호연구실 손상호 선임연구위원은 “수시로 거래를 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환율 변동에 따라 이익과 손실이 상쇄되기 때문에 위험이 적지만 한꺼번에 많은 거래를 하는 중소기업들은 환헤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차유정 인턴기자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
#환리스크#키코 피해#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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