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 할수록 손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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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은퇴자금 5억 원을 손에 쥔 김모 씨(63).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돈을 예·적금에 넣어 연간 1300만 원(세후) 정도의 이자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이후 예금 금리가 뚝뚝 떨어져 요즘은 이자수입이 한 달에 100만 원꼴도 안 되는 연간 1100만 원으로 급감했다. 김 씨는 “이자가 더 떨어질 것 같아 거래 은행에 가서 원금에 손해가 날 위험이 있더라도 수익이 높은 투자 상품을 추천받았다”면서 “예·적금 중 2억 원 정도를 빼내 즉시연금에 가입하고 월이자 지급식 주가연계증권(ELS)에도 투자했다”고 말했다.

돈을 은행에 맡기고 받는 이자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물가가 오르는 것을 감안하면 예금을 해놓고 가만히 앉아 돈을 까먹는 ‘마이너스 실질금리’ 시대가 온 것이다. 문제는 금리가 낮아도 시중자금이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금융시장 주변만 빙빙 맴도는 ‘인공위성 자금’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 예금이자 사상 최저 수준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 취급액 기준 저축성 수신금리는 평균 연 2.60%로 2월보다 0.03%포인트 하락했다. 1996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기 예·적금과 부금, 시장형 금융상품을 포괄하는 저축성 수신금리는 2011년에 평균 3.69%였지만 2013년 2.73%로 떨어졌다. 수신금리는 올해 들어서도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이주영 한은 금융통계팀 차장은 “자금이 풍부해 최근 은행들이 수신 상품에 우대 금리를 얹어주는 경우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금리가 2.6%라는 것은 1억 원을 맡겼을 때 연간이자가 세금을 빼고 약 220만 원(실제금리 2.2%)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2.9%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이다.

금리가 3%대를 넘는 시중은행들의 정기예금 상품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다. 한은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연 3% 이상의 이자를 주는 정기예금은 전체의 1.2%에 불과했다. 2년 전인 2012년 3월엔 연 3% 이상의 정기예금이 93.3%였다. 각 은행의 대표상품 금리도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바보의 나눔 적금’(1년 만기)은 기본금리가 1년 전 3.1%였지만 지금은 2.6%로 떨어졌다. 우리은행의 ‘우리토마스정기예금’ 금리 역시 지난해 3월 3.0%에서 현재 2.5%로 하락했다.

○ 부동(浮動) 자금만 늘어


금리가 계속 낮아지면서 예·적금에서 발을 빼는 고객도 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은행 정기예금은 559조 원으로 1년 전보다 2.9% 줄었다. 은행에서 돈을 빼내 여윳돈을 현금으로 갖고 있거나 만기가 짧은 단기 금융상품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이도 적지 않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 침체가 계속되면서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론적으로는 금리가 낮으면 저축보다 소비가 늘어야 하지만 지금은 가계 빚이 워낙 많고 경기 불확실성이 커 저금리가 좀처럼 내수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재테크 전문가는 시장금리 하향세가 조만간 멈출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기조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곧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영아 기업은행 PB고객부 과장은 “이렇게 낮은 수준의 금리로 돈을 2년 이상 묶어두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며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성 상품에 투자하면서 기회를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저축#예금 이자#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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