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빗나간 예측’에 사회경제적 비용만 눈덩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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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단체 “농업 피해 年2조”… 고속도 점거 등 격렬한 반대시위
연구기관 피해액 추정 ‘널뛰기’

“저희라고 왜 객관적으로 연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결과를 두고 ‘지금 농민들 목숨을 걸고 장난하느냐’는 항의 전화와 ‘농업계 의견만 지나치게 받아들였다’는 기업 관계자의 전화가 동시에 걸려왔습니다. 그렇게들 말을 하니…(웃음).”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를 돌아보던 농촌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어떤 식으로 결과를 내놓든 찬반 세력 모두에 ‘편파적’이라며 비난을 받았다”며 아쉬운 듯 말끝을 흐렸다.

한-칠레 FTA 전망 보고서를 내놨던 한 대학교수는 발표 이후 섬뜩한 전화를 받았다.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네 배에는 흉기가 안 들어가느냐”며 살해 위협을 했기 때문이다.

한-칠레 FTA에 따른 우리 농가의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일은 당시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였다. 연구기관과 연구방법에 따라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까지 널뛰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민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농가들이 볼 피해 규모 추산은 협상이 진행되던 2002년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구결과는 제각각이었다. 시설 포도 피해액을 놓고 한양대 연구팀은 10년간 2286억 원으로 예측했지만 농촌경제연구원은 1502억 원에 그칠 것으로 봤다. 복숭아에 대해서 한양대 측은 피해가 미미할 것으로 봤지만, 농촌경제연구원은 ‘상당한 피해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한국은 FTA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피해액 예측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2003년 10월 일부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한-칠레 FTA가 발효되면 농업 부문의 연간 피해액이 2조1254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듬해 2월까지 농민들은 뜻하지 않은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했다. 고속도로 점거와 상경 투쟁이 이어졌다. 2003년 12월 중순에는 ‘제사 투쟁’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일부 지역 단위 연맹에서 시작된 투쟁 방식으로 농촌 출신의 정부 고위관료, 국회의원의 선영(조상의 무덤)을 찾아가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는 치성을 드린다’는 것이었다.

비준을 놓고 국회에서는 매일같이 갑론을박만 거듭했다. 정치권 일부와 재계 등에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성이 먹칠 당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10년이 지난 지금, 정부기관 대학 농민단체의 예측 중 제대로 들어맞은 것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원칙 없고 들쭉날쭉했던 예측 탓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만 치른 것이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FTA#농업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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