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근속 길수록 영업실적 빛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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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신영증권, 업계 불황기에도 눈부신 성과 비결은?

한국투자증권-신영증권, 눈부신 성과 비결은?

혹한기를 겪고 있는 증권업계에서 최근 유독 눈에 띄는 두 회사가 있다. 바로 한국투자증권과 신영증권.

올해 4∼6월 기준으로 한국증권은 순이익이 1위(286억 원), 신영증권은 영업이익이 1위(259억 원)다. 두 회사는 7∼9월에도 월등한 실적을 낸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한다.

두 회사가 좋은 실적을 낸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숫자 10.5와 7.6에 비밀이 숨어 있다.

증권업계에서 이런 숫자가 나오면 통상 수익률을 의미하지만 사실은 한국증권과 신영증권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다. 이직이 잦기로 유명한 증권업계에서 두 회사는 직원들이 오래 근무하는 증권사로 꼽힌다. 애널리스트의 회사별 평균 근속연수는 3년 1개월, 펀드매니저는 4년 10개월인 것과 비교하면 잘 알 수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그래서 ‘직원이 장기 근속하는 증권사가 실적도 좋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 트렌드와 달리 직원들을 한 회사에 오래 붙잡아 두는 힘은 뭘까.

○ “공격적으로 도전해 성과 낸다”

한국증권은 연봉과 복지수준이 업계 최고로, 성과를 내면 ‘확실히’ 보상해준다. 이런 문화는 참치를 많이 잡으면 선원들과 이익을 나눴던 동원그룹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게 자체 분석이다.

정일문 기업금융본부장은 “한국증권은 다른 금융지주처럼 기댈 수 있는 은행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직원들이 영업을 스스로 개척하는 문화가 강하다”며 “본인만 성과를 내면 확실히 보상받는다”고 말했다.

2006년에는 채권시장 점유율이 1%가 안 됐던 한국증권이 3년 만에 점유율을 10%로 끌어올린 것도 한 사례. 정 본부장은 “채권업무 경험이 있는 직원을 찾아보니 회사를 나간 직원이 거의 없어서 다시 끌어 모았다”며 “직원 한 명에게 딱 한 기업만 맡겨 물량을 많이 따오도록 했더니 성과가 났다”고 설명했다.

부동산금융 분야도 같은 사례다. 이전에는 국책은행, 보험사가 도맡아 하던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대형오피스, 사회간접자본(SOC) 등과 관련한 금융을 한국증권은 2005년 시작했다. 김성환 프로젝트금융본부장은 “다른 금융사가 하던 자금조달 방식보다 비용을 1.5%포인트가량 낮추는 방식으로 새 시장을 개척했다”며 “증권사의 강점인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을 통해 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증권의 올해 4∼6월 영업이익 가운데 18%가 프로젝트금융본부에서 나왔다.

충분히 보상해주고 도전하게 만드는 문화가 직원들을 오래 일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상호 사장은 2007년 ‘최연소(47세)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기록을 세운 후 7년째 재임해 한 증권사에서 가장 오래 일한 CEO라는 또 다른 기록을 쓰고 있다.

○ “덜 벌어도 안전하게”

2011년 5월 신영증권 상품전략협의회 회의실. 상품 판매 관련 부서의 책임자들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브라질 채권을 팔지를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당시 증권업계에서는 브라질 채권 열풍이 거셌고 영업 일선에서는 “브라질 채권을 팔라는 고객의 항의가 빗발친다”고 원성이 자자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팔지는 않더라도 브라질 채권을 갖춰 놓기는 해야 합니다. 고객들을 다른 증권사에 뺏기고 있습니다.”

“브라질 경제가 언제 거꾸러질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헤알화 환율이 급변동할 경우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격론 끝에 결국 브라질 채권을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반 펀드에 비해 수수료가 세 배 이상 많았지만 위험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올 들어 헤알화 가치는 급락했다.

황혁 영업전략부 이사는 “금융상품은 시간이 지나면 고객을 위해 팔았는지, 회사를 위해 팔았는지가 드러난다”며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상품을 고객에게 팔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중소형사인 신영증권은 ‘고위험 고수익’보다는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문화가 강하다. 강세장에서 큰 수익을 내지 못하지만 올해까지 42년 연속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이 걸려도 안전한 길을 택한다’는 원칙을 지켰기에 가능했다.

부수적인 업무도 적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전체 직원이 참여하는 상품 판매 촉진 행사는 두 번 있었다. 금융회사들이 판매 촉진 행사를 상시적으로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판매 촉진 행사는 반짝 효과는 있지만 고객이 오래 유지되지 않아 직원들에게 부담만 된다고 본 것이다.

직원들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갈 때 부조금을 내지 않는다. 회사에서 경조사 지원금을 직원 개개인이 낸 것을 합한 액수보다 더 많이 주기 때문에 직원들은 ‘몸’만 가는 것이다. 지난해 결혼한 안혜성 상품기획팀 사원은 “신랑이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설명을 해주니 서로 부담이 없다며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신영증권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는 직원이 많아졌다. 황 이사는 “열심히 일만 하면 다른 장애물이 없어 계속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89년 신영증권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24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핵심 업무에 집중하게 하는 문화가 장기근속을 낳았고, 장기근속자들은 회사의 경영원칙을 구현해냄으로써 불황기에 빛을 발했다는 것.

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장기근속자가 많은 것은 회사에 대한 신뢰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위기가 닥쳤을 때 구성원들이 희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투자증권#신영증권#근속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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