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보험용 모셔오기’ 심해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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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법조인 늘고 기업인은 줄어… 도입 15년째 ‘전문성 제고’ 부응 못해
“정부개입-규제 심한 나라의 특징”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한 사외이사 제도가 15년이 되도록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17일 동아일보가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인 러셀레이놀즈의 도움을 받아 국내외 주요 기업의 사외이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해외 기업들은 정보기술(IT) 전문가 등을 사외이사로 대거 영입한 반면 국내 기업들은 주로 관료 출신과 학자로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힘 있는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모시는 관행은 세무조사, 검찰 수사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보험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사외이사 13명 중 11명이 기업인 출신이며, 이 가운데 5명은 IT 전문가다. 머리사 메이어 야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바이두닷컴 출신 기업인이 포함돼 있다.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은 IBM 회장을 지낸 새뮤얼 팔미사노 등 IT, 식품, 보험, 제약, 생활용품 출신 기업인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애플도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회장 등 엔터테인먼트, 생명과학, 패션, 화장품, 방위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가가 사외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면면은 딴판이다. 월마트와 업종이 같은 이마트의 사외이사는 4명 모두 국세청, 검찰, 감사원, 보건복지부 등 관료 출신이다. 에너지 기업인 SK이노베이션과 전자업체인 삼성전자도 각각 한 명을 뺀 나머지를 관료와 교수 출신으로 채웠다.

해외 기업의 사외이사는 보통 7∼8년, 길게는 15년 이상 재임하지만 한국 기업에선 사외이사가 3년 임기를 연임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는 추세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1개 그룹, 250개 계열사의 사외이사를 분석한 결과 관료, 법조인, 교수 출신 사외이사는 크게 늘어난 반면 기업인 출신은 많이 줄었다.

전문가들은 계열사 CEO가 아니라 총수가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총수 경영이 여전하고, 정부가 기업의 ‘갑(甲) 노릇’을 하는 경영 환경이 최근 기업 규제 강화로 더욱 심해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구성이 이렇다 보니 사외이사들이 전문성을 발휘하고 총수의 독단을 견제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지수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가 늘어난 것은 최근 경제민주화 바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리스 그로스먼 러셀레이놀즈 글로벌 디지털사업부 본부장은 “한국과 같은 이사회 구성은 정부의 개입이 많고 규제가 심한 국가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김용석·강유현 기자 nex@donga.com
#기업#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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