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들, 요즘 무슨 공부 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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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계열사 사장단 40명 서초사옥 모여 미래전략 토론학습

요즘 삼성그룹의 사장들은 무슨 공부를 할까. 삼성은 고 이병철 선대 회장 때부터 매주 수요일 사장단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하고 공부하는 전통이 있다. 요즘도 매주 수요일 오전 8시면 전 계열사 사장 40여 명이 서울 서초사옥 39층 강의실에 모여 1시간 동안 회의를 겸한 스터디를 한다.

2011년 초까지는 계열사별 사업 현황과 전략을 공유하는 데 주안점을 뒀지만 지난해부터는 주로 교수, 전직 고위공무원 등 외부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청하고 있다. 강의 주제도 경영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중국, 리더십, 인재, 역사 등 다양한 키워드를 포괄한다.

폐쇄적이었던 삼성 수요 사장단회의가 이처럼 달라진 것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지시 때문이다. 이 회장은 “아무리 많이 책을 읽는다고 한들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불러 직접 강의를 듣는 것만큼 효과적인 학습은 없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사장들이) 내 눈치를 보느라 불편해할 것’이라며 회의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선대 회장과 달리 이 회장은 사장단회의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2년간의 강의를 들여다보면 2011년 상반기(1∼6월)까지는 ‘삼성의 녹색경영비전 2020’(백재봉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전무), ‘전자산업 동향 및 대응전략’(박상진 삼성SDI 사장) 등 그룹 내부 주제가 많았다.

2011년 하반기 들어서는 인문학으로 확대된다.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교육과학분과 전문위원을 지내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을 보완한 윤종록 연세대 융합기술연구소 교수가 2011년 9월 ‘유대인의 창조정신, 후츠파(Chutzpah)’를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강의에서 “유대인의 창조정신은 ‘뻔뻔스럽다’에서 ‘대담한 용기’라는 뜻까지 의미가 광범위한 후츠파라는 단어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일찌감치 창조경제론을 전파했다. 이 밖에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이 ‘프로야구 600만 관중의 성공 비결’,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2011년 한국 청춘들’을 주제로 강의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위기’와 ‘중국’, ‘리더십’이 수요 사장단회의의 새로운 키워드로 등장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가시화되고 한국 미국 등 지구촌 곳곳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른 해였던 점이 반영된 것이다. 삼성에 새로운 기회이자 위협으로 다가온 중국과 관련해서는 여러 차례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삼성그룹은 올 초 임원 교육 프로그램에도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해 ‘중국이 언제부터 미국을 제치고 세계 패권을 쥘 것인지’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는 리더십 강의가 주를 이뤘다. 특히 최진석 서강대 교수의 ‘노자에게 배우는 리더십’ 강의는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이 극찬하며 한 번 더 듣기를 요청해 4개월 만에 앙코르 강연이 성사됐다.

삼성 사장단회의는 전통적으로 딱딱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초청강연 역시 반응이 거의 없어 ‘유명 강사들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주제가 다양해지면서 분위기는 상당히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강사로 참석했던 한 외부 인사는 “강의실 모양이 ‘ㄷ’자 형태로 돼 있어 모든 시선이 강사에 집중되는 구조라 진땀이 났다”고 말했다. 사장들의 수업 태도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학생들보다 자세도 꼿꼿하고 진지하게 경청한다. 졸거나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며 “다만 웬만한 유머에는 무반응이어서 민망했다”고 기억했다.

강사는 미래전략실 멤버들이 회의를 거쳐 선정한 뒤 2, 3개월 전 섭외를 마친다.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예지력’이 발휘될 때도 있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터지고 이틀 뒤 열린 올 1월 30일 강의 주제는 ‘2013년 그룹 환경안전 추진전략’(백재봉 전무)이었다. 북한이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한 다음 날인 6일에는 김영수 서강대 교수가 ‘북한 동향 및 남북관계 전망’을 강의했다. 이인용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두어 달 전 미리 섭외해 놓은 강의인데 우연히도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았다”고 말했다.

삼성 수요 사장단회의의 강연료는 강사마다 다르다. 삼성 관계자는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에서 형성된 각 강사의 ‘몸값’에 맞춰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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