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그룹 ‘저소득층 특별전형’ 1기 신입사원 2명의 작은 약속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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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맞선 후배들에게 기회의 사다리 내려주고 싶어”

“요즘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안 통한다고들 하잖아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저소득층 후배들에게 ‘기회의 사다리’를 내려주는 선배가 되겠습니다.”

삼성 ‘저소득층 특별전형’ 1기 신입사원들의 작은 약속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하반기(7∼12월) ‘함께 가는 열린 채용’을 내걸고 처음으로 저소득층 할당 채용제도를 실시했다.

이렇게 뽑은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출신이 지난해 공채로 선발한 전체 대졸 신입사원 4500명 중 약 5%인 220명이다. 가정형편 때문에 해외 어학연수나 인턴십 등을 하지 못해 취업에서도 밀리는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 구조를 깨 보자는 취지다.

저소득층 특별전형은 총 3차에 걸쳐 진행됐다. 2차 직무적성검사(SSAT)와 3차 임원면접은 일반 전형과 같지만 1차 서류전형에서 자기소개서 외에 어려웠던 성장 과정과 극복 비법을 적은 수기(에세이)를 별도로 제출했다.

저소득층 특별전형을 통해 지난해 11월 1일자로 ‘삼성맨’이 된 23세 동갑내기 여성 K 씨와 S 씨가 입사 때 제출한 에세이를 보고 향후 포부를 들어봤다. 삼성은 저소득층 입사자가 누구인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어 익명으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S 씨의 부모는 학교 선배에게 속아 다단계 사업에 손을 댔다가 첫달 수입 10만 원을 끝으로 매달 100만 원 넘게 빚이 쌓였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 건 이미 화장실도 없는 시골의 월세 단칸방으로 내몰린 뒤였다. S 씨는 ‘부엌 신발장에서 찬물로 샤워하다 네 식구가 부둥켜안고 펑펑 운 기억이 납니다. 나이는 어렸지만 장녀인 내가 반드시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라고 에세이에 썼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 볕 들 날이 올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리며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왔다’고 했다. 그가 고등학생 때 부모는 이혼했고, 대학 2학년에 올라가던 해에 아버지는 유명을 달리했다. 현재 S 씨는 동생을 보살피며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K 씨는 소아마비 장애인 부부의 외동딸이다. 가정형편도 문제였지만 부모가 아이를 키울 여력이 안 돼 고등학교 때까지 할머니와 친척 집을 전전했다. 그는 에세이에서 ‘어렸을 때부터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며 살다 보니 우리 집을 갖는 게 꿈이었다’고 밝혔다.

에세이 내용과 달리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가정환경이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인생에 독(毒)이 아니라 오히려 득(得)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S 씨는 “급식비 내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무조건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방도 없고 공부할 책상도 없어서 밥상에 앉아 공부해야 했지만 독하게 공부해 반에서 2등까지 했다”고 말했다. K 씨 역시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형편이 못 됐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을 졸라 문제집을 받았고 모르는 부분은 성적이 좋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며 공부했다”고 돌이켰다.

두 사람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장학금을 받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한편으로 생활비를 벌려고 커피숍 서빙부터 도서관 사서까지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헝그리 정신’으로 버틴 4년이었다. 남들처럼 영어학원 다니며 토익 점수를 따고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진 못했지만 독하게 버틴 4년은 결국 스펙보다 소중한 ‘인생 경험’으로 남았다.

두 사람은 두 달여간의 사내 교육을 마치고 4일 현업에 투입됐다. 맡은 일은 다르지만 둘은 10년 뒤 하고 싶은 일도 비슷했다. 자신들처럼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위해 애쓰고 싶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처럼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 삼성의 이름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요.”(K 씨) “나처럼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의 사다리를 내려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S 씨)

첫 월급으로 하고 싶은 일은 여느 신입사원들과 비슷했다. K 씨는 “아버지에게 좋은 정장 한 벌 해드리고 싶다”고 했고, S 씨는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하다며 딸의 취업 소식에 제대로 기뻐하지도 못한 어머니에게 맛있는 밥 한 끼 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삼성#저소득층#특별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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