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수출 주종목 50개중 26개 겹쳐… ‘엔低의 저주’ 비상

  • Array
  • 입력 2013년 1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볼트와 너트를 제조할 때 필요한 금형을 만드는 A사는 작년 말 일본 수출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원-엔 환율이 떨어져 팔수록 손해였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기술제휴를 맺은 일본 업체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설득했지만 한동안 환율이 정상화될 것 같지 않아 일본 수출은 당분간 포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트북, PC,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IT)기기 케이스를 제작하는 B사 사장도 속이 타들어간다. 이 회사는 전체 수출 물량의 70∼80%를 일본으로 보낸다. B사 사장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엔화를 환전해 보니 수중에 들어온 돈이 1년 전보다 30% 줄었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와 원화 강세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수출기업들이 적잖은 피해를 보고 있다. 일본 기업들과 수출품목이 겹치는 국내 기업들은 이제 싼값을 무기로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자동차 철강 섬유 환율 주의보

28일 한국무역협회와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한국과 일본의 주요 수출 품목 50개 중 중복되는 품목은 26개에 이른다. 특히 주요 10대 품목 중에선 원유를 제외한 석유류, 자동차, 자동차 부품, 전자집적회로, 유조선을 제외한 선박 등 5개가 겹쳤다. 이는 세계관세기구(CWO)가 분류하는 HS코드 4단위를 기준으로 한일 양국의 주요 수출품목을 비교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특히 자동차, 철강, 섬유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작년 4분기(10∼12월) 영업이익은 각각 11.7%, 51.1% 줄었다.

이경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격에 민감한 미국 소형차 시장에서 일본 업체와 경쟁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체는 물론 아시아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철강 기업들도 불리한 조건에서 일본 업체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 기업들 ‘환율 리스크’ 대비 분주


환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7∼12월) 9300억 원의 환차손을 입었고, 올해 이 같은 기조가 지속되면 환율에 따른 손실이 3조 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측은 “원가절감, 물류 효율화,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등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브라질 공장을 준공해 글로벌 생산 체제가 완성된 만큼 해외생산 비중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또 중·대형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고가차 판매 비중을 높일 방침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8일 오전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주재한 경영전략회의에서 환율 비상 경영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주재한다.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장은 “올해 평균 원-달러 환율은 1056원, 엔-달러 환율은 83.9엔을 예상하고 있다”며 “결제통화 다변화, 환 헤지 등을 강화해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제품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현지에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원료를 수입하는 데 쓰는 ‘자연 헤지’ 방식을 택했다. 환전 단계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경희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기업들은 품질이나 디자인 브랜드 가치 등을 높이고 수출 품목을 다변화해야 하고, 중소기업은 일본이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관세인하 혜택을 적극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강유현·박창규·정효진 기자 yhkang@donga.com
#수출#자동차#석유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