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금출자 믿었다가… 농협, 사업구조개편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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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거품 된 1조 지원 약속

농협이 경제·금융 부문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약속했던 현물 출자(1조 원)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농협이 자체적으로 농업금융채권(농금채)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에 대해 정부가 이자를 내주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30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올 2월 농협이 경제사업 강화를 위한 사업구조 개편이 끝나면 농협에 총 5조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경제사업을 활성화하려면 유통센터 건립, 판매망 구축 등 많은 자본이 드는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보유한 산은금융그룹과 한국도로공사의 주식 각 5000억 원어치씩 총 1조 원을 현물로 출자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농협이 4조 원의 농금채를 발행하면 연 이자 1600억 원을 5년 동안 정부가 내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농협은 3월에 경제사업과 금융 부문을 분리하고 임원 급여 반납, 임원 수 및 본부인력 감축 등 비상경영체제를 갖춰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정부도 약속대로 올 초부터 농협이 발행한 농금채 4조 원에 대한 이자를 대신 내주고 있다.

그러나 산은금융 주식 출자 문제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진통을 겪으면서 정부와 농협의 계획은 꼬이기 시작했다. 산은법에 따르면 정부가 산은 주식을 매각하려면 산은이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에 대해 국회 동의를 거쳐 지급보증을 해줘야 한다. ‘산은 민영화’에 반대해 온 야당이 6월에 정기국회에 제출된 지급보증 동의안에 거부 의사를 밝혀 이 방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다급해진 농협은 농금채 추가 발행 카드를 대안으로 꺼내들었다. 현물 출자를 백지화하고 농금채를 1조 원어치 추가 발행하는 대신 이에 대한 연 이자 340억 원을 5년간 정부가 대신 내달라고 요청한 것. 농협 관계자는 “‘산은 민영화’ 논란을 비켜갈 수 있어 야당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엔 정부가 거부하고 나섰다. 각종 복지예산이 증액되는 상황에서 농업 예산까지 늘리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현물출자 방안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며 내년도 국회에서 계속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재정부 측은 이자 부담을 늘리려면 다른 농업 관련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계획됐던 경제사업 활성화가 늦어지자 농업단체들은 정부를 항해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다. 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낙농육우협회 등으로 구성된 농수축산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농민의 숙원인 농협 사업구조 개편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며 “이자 보전액을 내년도 예산안에 즉각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또 농협의 한 고위 관계자는 “농협 지원을 위해 다른 농업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농업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농협#현금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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