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살 분리기술로… 없던 시장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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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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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꼬막 달인’ 국보수산 김갑온 사장

“살만 떼내니 살 만해졌어요” 김갑온 국보수산 사장이 전남 여수 공장에서 포장 작업을 앞둔 꼬막을 들고 웃고 있다. 30여 년 전 꼬막 양식을 시작한 그는 이제 연매출 50억 원의 중소기업 사장이 됐다. 이마트 제공
“살만 떼내니 살 만해졌어요” 김갑온 국보수산 사장이 전남 여수 공장에서 포장 작업을 앞둔 꼬막을 들고 웃고 있다. 30여 년 전 꼬막 양식을 시작한 그는 이제 연매출 50억 원의 중소기업 사장이 됐다. 이마트 제공
“다른 양식장에서는 80∼90%가 죽었답니다.”

17일 오전 전남 고흥군 득량 만 앞바다. 국보수산 김갑온 사장(54)이 배에 오르자 선장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국보수산은 득량 만에 35ha 넓이의 꼬막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육지가 양팔로 바다를 품고 있는 듯한 득량 만에는 국보수산 외에도 여러 업체의 꼬막 양식장이 있다.

30여 년간 꼬막 양식을 해온 김 사장도 “왜 꼬막이 죽는지 정확히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올여름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을 받았고 수온이 높아진 것도 원인일 수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바다는 뿌린 대로 돌려주지 않아요. 건져내기 전까지는 빈껍데기인지 살이 들었는지 알 수 없죠.”

배는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양식장 바닥을 그물로 훑었다. 걷어 올린 그물에는 꼬막이 가득했다. 김 사장은 어른 키만큼 쌓인 꼬막 더미를 삽으로 한 번 푼 뒤 살펴보기 시작했다. 입을 벌리고 죽은 껍데기도 적지 않았지만 한눈에 봐도 살아있는 꼬막이 더 많았다. 김 사장은 그제야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태풍이 오기 전에 일부를 건져 팔았거든요. 다른 양식장은 알이 작다고 건지지 않았고요. 양식장 내 밀집도가 낮아진 덕에 덜 죽은 것 같습니다.”

○ 30년 꼬막 달인의 실패 스토리

김 사장은 20대 중반이던 1982년 전남 여수에서 꼬막 양식을 시작했다. 종패(씨조개)를 키워 다른 양식장에 팔기도 했고 직접 성패(다 자란 조개) 양식도 했다.

1985년부터 꼬막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판매가 부진해졌다. 김 사장은 꼬막을 수집해 파는 도매업에 손을 댔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꼬막 가격은 10년 전보다 더 떨어졌고 판매는 여전히 시원찮았다.

“냄비처럼 급하게 끓었다가 급속히 식어버리는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요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본 시장에 눈을 돌린 것도 그때였습니다.”

일본에는 껍질에서 살만 발라내 담은 꼬막 통조림이 인기였다. 김 사장은 수협을 통해 일본에 꼬막살을 수출할 방법을 찾아봤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가 끼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꼬막살을 분리하는 기계가 필요했다. 당시 국내에는 그런 기계가 없었다. 김 사장과 같은 회사 이성문 상무는 일본의 꼬막살 분리기를 관찰하며 작동 원리를 터득했다. 조선소에서 일했던 이 상무는 기계에 익숙했다. 3개월에 걸쳐 두 사람이 자체 제작한 기계는 하루에 8t의 꼬막살을 발라낼 수 있었다. 5t을 처리하는 일본 기계보다 효율이 좋았다.

1998년 10월 여수에 꼬막 가공 공장을 세운 국보수산은 이듬해부터 일본 수출을 시작했다. 1999년 첫해 700t, 18억 원어치의 꼬막살을 수출해 드디어 성공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태풍 매미가 양식장이 있던 전남 고흥군 득량 만 앞바다를 덮쳤다. 태풍이 지나간 뒤 폐허처럼 변한 양식장에는 종패가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꼬막 시세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어렵게 연결됐던 일본 바이어들은 “값싼 통조림을 만드는 데 비싼 꼬막을 쓸 수는 없다”며 거래를 끊었다.

당시까지 국내에서는 껍데기가 없는 조갯살은 신선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어 마땅히 꼬막살의 판로가 없었다. 꼬막살 분리기는 공장에서 철거했다. 김 사장은 ‘이대로 공장 문을 닫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생선가스 제조나 고등어 포장 등을 하며 근근이 회사를 꾸려갔다.

○ 10여 년 만에 빛을 본 꼬막살

2007년 이마트에서 중소기업 상품박람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은 김 사장은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막 사업이 신통치 않은 와중에도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을 받는 등 차근차근 재도약을 꿈꿔온 그였다. 내로라하는 전남지역 요리사들을 대동하고 박람회에서 꼬막을 이용한 각종 요리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이마트는 국보수산이 종패 양식부터 포장, 유통까지 도맡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납품업체로 선정했다. 중간 유통단계를 줄일 수 있어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안정적인 판매망이 생기면서 국보수산의 연간 꼬막 매출은 20억 원이 넘었다.

지난해 초 김 사장은 국보수산을 담당하는 이마트 최우택 바이어에게 넌지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사실 우리한테 꼬막살을 자동으로 발라내는 기술이 있어요. 꼬막살을 상품화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기계를 다시 만들 텐데….”

최 바이어는 꼬막살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국보수산이 꼬막살을 처음 내놓았던 13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껍데기 없는 조갯살이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편리함을 추구하는 요즘에는 오히려 껍데기 까는 게 귀찮아 꼬막을 잘 안 먹는다고 생각했다.

김 사장은 다시 기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 1월 이마트 매장에서 포장된 꼬막살을 처음 선보였다. 올해 꼬막살은 당초 목표인 10억 원 매출을 훌쩍 넘어 20억 원의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국보수산의 매출도 꼬막살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올해 50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꼬막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경쟁업체도 생겼고 다른 대형마트에서도 꼬막살을 팔기 시작했다. 국내에 없던 시장이 새로 형성된 셈이다. 김 사장은 양념을 함께 포장한 신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김 사장은 “올해 꼬막살은 태풍이 오기 전인 3∼6월에 건진 꼬막으로 만들어 안정적인 매출이 나왔어요. 바다의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 효자예요”라며 웃었다.

여수=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김갑온#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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