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현지화 무기’로 해외서 살길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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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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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만 있으면 뭐 하나, 규제만 강화하겠지…”

■ 6개 시중銀 올 해외점포 24개 신설

하나은행 류상혁 부지점장은 2008년 3월 본점 심사부에서 중국 현지법인으로 옮기면서 사표를 썼다. 중국하나은행으로 전출을 갈 때는 하나은행 본사에서 퇴사해야 한다는 인사 지침에 따른 것이다. 법인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직원이 파견 형식으로 해외법인에 배치되는 나머지 은행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는 해외 영업에서 성공하려면 온전한 현지화가 필수라고 하나은행 임원진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하나은행 임직원의 90% 이상이 중국인으로 충원되는 등 현지 채용 비중도 크게 끌어올렸다. 공식회의도 다른 금융회사와 달리 중국어로만 진행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지화를 무기로 2015년까지 전체 순이익의 15%를 해외에서 거둬들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국내외 시장 여건이 나아지지 않고 있지만 금융권의 해외 진출은 본격화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 6곳(국민, 신한, 우리, 하나, 외환, 기업은행)에서만 올 들어 현지법인과 지점, 사무소 등 총 24곳이 해외에 새로 개설됐다. 2010년의 4곳보다 크게 늘어난 규모다. 특히 지점이나 사무소보다 훨씬 덩치가 큰 해외법인 설립은 지난해에는 한 건도 없었지만 올해는 9월 우리은행 브라질법인과 11월 KB국민은행 중국법인 등 2건이다.

은행들의 해외 진출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흥(이머징)시장에 집중돼 있다. 이머징 지역의 성장속도가 빨라지면서 갈수록 커지는 금융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것이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전 세계 은행 수익에서 신흥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33%에서 2020년 50%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은행은 21일 베이징에 법인을 설립함과 동시에 지점을 내고 영업에 들어갔다. 국민은행은 올 들어 해외법인 1개와 지점 2개, 사무소 1개를 새로 만들었다. 하나은행은 올해 중국 광저우와 베이징, 상하이에 지점을 각각 신설했다. 하나은행은 인도네시아에서만 올해 6개 지점을 세웠다. IBK기업은행은 22일 인도 뉴델리사무소를 열었다.

특히 최근 금융권의 해외 진출은 단순히 해외교민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현지 기업이나 주민을 직접 공략하는 ‘현지화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글로벌 지역전문가’ 제도를 통해 81명의 임직원을 31개국에 보내 해당국의 언어와 문화를 직접 체험토록 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아예 한국과 문화 및 관습이 비슷한 중국 동북 3성(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성)을 주요 거점지역으로 정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북한이 개방경제로 나아가면 중국 동북 3성 지점들이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부화재는 미국 하와이에 지점을 세운 뒤 통상 3일 이상 걸리던 계약 안내 절차를 하루로 단축해 현지 시장에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태풍 피해가 심한 괌에선 특화된 보험상품으로 시장점유율 2위(16%)를 달리고 있다.

금융권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국내 금융시장 포화와 규제 강화에서 찾을 수 있다. 주 수입원인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을 둘러싼 시중은행들의 경쟁이 이미 치열한 데다 가계대출은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억제로 증가세가 꺾인 지 오래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자산증가율은 2001년 10.6%에서 지난해 7.2%로 떨어진 상태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한국에서 금융산업은 적은 수의 고객을 서로 빼앗기 위한 출혈경쟁에 접어들었다”며 “철저한 현지화로 해외에 나가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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