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경제사업 이렇게 살리자]<上>중앙회-지역조합 연합 매출 두자릿수 늘린 ‘고령’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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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산품 하루 135t 집하-선별-출하… “유통센터는 꿈의 공장”

《농협은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5위의 협동조합이다. 올해 3월 ‘농협경제지주’ 출범과 함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한 농협은 본연의 업무인 경제사업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특히 협동조합 특유의 장점을 살려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적극 발굴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농협이 본모습을 되찾기 위해 추진하는 다양한 경제사업의 현장을 3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경북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에 소속된 농민들이 생산해 APC에 맡긴 농산물이 선별 작업을 앞두고 APC 앞에 쌓여 있다.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 제공
경북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에 소속된 농민들이 생산해 APC에 맡긴 농산물이 선별 작업을 앞두고 APC 앞에 쌓여 있다.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 제공

“이곳은 고령 농민들의 소망이 담긴 ‘꿈의 공장’입니다.”

15일 오후 경북 고령군 성산면 기족리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이경환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 상무가 대기업 공장 못지않은 위용을 뽐내는 APC를 가리키며 이렇게 자랑했다.

1만8144m² 땅에 총면적 4644m², 2층 높이로 2009년 5월 문을 연 고령군 APC는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 인증 선별장, 저온저장고 등을 갖춘 최신식 농산물 유통시설이다. 고령의 특산품인 딸기 수박 멜론 참외 등을 하루 최대 135t까지 처리할 수 있다.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은 400여 농민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이곳에 설치된 자동화 설비를 이용해 선별하고 포장해 전국에 유통시키고 있다. 이 상무는 “APC가 들어선 후 농민들이 대형 유통업체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APC 직원들이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딸기 가운데 품질이 좋은 것만 가려내는 선별작업을 하는 모습.
APC 직원들이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딸기 가운데 품질이 좋은 것만 가려내는 선별작업을 하는 모습.

○ 농민은 생산만, 판매는 농협이 전담

2005년 12월 농협중앙회 고령군지부와 이 지역의 4개 지역농협은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을 만들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잇달아 체결되고 발효될 것에 대비해 농산물의 생산·유통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꿔보자는 뜻을 모은 결과였다.

연합사업이란 농민이 농산물을 생산하면 농협중앙회와 지역조합이 함께 만든 ‘연합사업단’이 마케팅과 판매를 전담하는 유통사업을 뜻한다. 연합사업단은 농가를 ‘공동선별 출하회(공선출하회)’나 ‘공동브랜드’로 조직화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다음 농협이 구축해 놓은 판매망을 활용해 상품화, 마케팅을 추진한다.

이처럼 연합사업단이 생산 이외의 과정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안심하고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다. 농민은 품질을 높이고 농협은 유통망을 넓히는 역할 분담을 통해 대형 유통업체와 대등한 경쟁력을 키울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연합사업단이 없었던 과거에는 농민이나 지역농협이 생산과 판매를 모두 책임지는 구조여서 마케팅이나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았다. 품질이 좋은 농산물을 골라내는 선별 작업도 농민 스스로 해야 했다. 기계가 없는 농민들은 인건비를 써가며 사람을 고용해야 했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눈에만 의존해 선별작업을 하면 농산물의 품질이 균등하지 않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농협은 이런 연합사업이 국내 농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보고 경제사업 활성화 방안의 중점 추진과제로 삼았다. 이 상무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잘 팔아주는 게 우리의 가장 큰 임무”라며 “대형마트 바이어들을 한 달에 수십 번씩 만나 고령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사달라고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이 올해 5월 경기 수원 농협하나로마트에서 연 고령 농산물 판촉 행사. 연합사업단은 농산물의 판매와 마케팅, 판로 개척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이 올해 5월 경기 수원 농협하나로마트에서 연 고령 농산물 판촉 행사. 연합사업단은 농산물의 판매와 마케팅, 판로 개척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 혁신기업 못지않은 성장세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은 해마다 매출이 급성장해 이미 성공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농민들이 생산에만 전념하면서 품질 향상에 힘썼고, 농협 역시 전국 각지에 판매망을 구축하고 ‘K멜론’ 같은 공동브랜드를 널리 알리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26억 원에 불과했던 연매출액은 △2007년 54억 원 △2008년 64억 원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어 APC가 문을 연 뒤 △2009년 106억 원 △2010년 131억 원 △2011년 162억 원 등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올해 목표 200억 원은 이미 이달 초에 달성했다. 6년 만에 연매출 규모가 10배로 늘어난 것. 급성장하는 제조업 분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가파른 신장세다.

고령군 APC에는 당도가 높은 과일을 골라내는 ‘비파괴 선별기’가 있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도 품질 좋고 맛이 좋은 과일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최신식 설비다. 이 기계가 없으면 사람의 눈과 촉감으로 골라내야 해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다. APC는 또 520m² 규모의 대형 저온저장고에 농산물을 장기간 저장할 수 있다. 농민들은 이 설비들을 공동으로 이용해 더 좋은 맛을 내는 과일을 생산할 수 있었고, 농가 소득도 덩달아 높아졌다.

20여 년간 멜론 농사를 지어 온 유병묵 씨(55)는 연합사업에 참여한 이후 연소득이 30% 정도 늘었다. 선별작업이나 판로 개척에 쓰던 시간에 품질 개선에 힘쓰거나 다른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씨는 “농민들도 한데 뭉쳐서 규모를 늘리고 품질 개선에 힘쓰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며 “단가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연합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농민들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고령군 농협연합사업단이 성공 모델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고령군의 역할도 컸다. 고령군은 APC 설립에 필요한 64억 원(국비와 도비 28억 원 포함)을 모두 지원했다. 기초지방자치단체로는 파격적인 투자였다. 조용호 고령농협 연합사업단장은 “아무리 큰 농협이라도 수십억 원을 한 번에 투자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며 “고령군의 지원이 없었다면 APC를 세울 수 없어 이런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농협#농업#농협연합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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