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은퇴준비 돈이 전부 아니다]<4> 무역회사 임원서 자원봉사자 변신 장한영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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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돌보면 스스로 뿌듯… “남 도우며 내 삶 되찾았죠”

노인 돌보는 노인 장한영 씨가 4일 서울 동대문구 용신동 서울동부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요양보호사 외에 노인들을 위해 이발 봉사도 하는 장 씨는 “봉사활동으로 삶의 활력과 건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노인 돌보는 노인 장한영 씨가 4일 서울 동대문구 용신동 서울동부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요양보호사 외에 노인들을 위해 이발 봉사도 하는 장 씨는 “봉사활동으로 삶의 활력과 건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잃었던 제 삶을 되찾았습니다.” 4일 오전 7시, 직장인들이 늦잠을 즐기는 일요일 아침부터 장한영 씨(58)는 출근 준비에 한창이다. 장 씨의 일터는 서울 동대문구 용신동 서울시립동부병원. 그는 지난해 말부터 이 병원에서 하루 8시간씩 무연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장 씨가 돌봐야 하는 이 병원 308호실의 환자 대부분은 침대에서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중증환자들이다. 그는 환자들에게 제 시간에 맞춰 약을 먹이고 몸이 굳거나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마사지를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대소변까지 받아낸다.》

장 씨가 담당하는 12명의 환자를 모두 돌보려면 잠시 짬을 내 휴게실을 다녀오기도 어렵다. 퇴근할 때면 손발이 떨릴 정도로 고된 일이지만 은퇴 후 방황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장 씨는 지금이 가장 만족스럽다. 장 씨는 “은퇴 뒤 집에만 있었던 때와 비교하면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지금이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 자원봉사로 제2의 전성기

중견 무역회사를 다니던 장 씨는 2006년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는다. 그가 임원으로 있었던 무역회사가 그해 자금난으로 파산했다. 52세의 나이에 생각지도 못하게 은퇴자 대열에 합류하게 된 그는 재취업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파산회사의 중역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큰 부족함이 없었지만 준비 없이 찾아온 은퇴를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재취업을 위해 직업전문학교를 다니며 보일러기능사, 건축도장기능사 등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20년 이상 사무직으로 일했던 50대 은퇴자에게 선뜻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장 씨는 직장을 잃은 그해 성격 차이로 오랜 불화를 겪었던 부인과 이혼했다. 갑작스러운 은퇴와 이혼으로 직장과 가정을 모두 잃은 장 씨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것은 직장을 다니던 시절 성당을 통해 장애인시설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을 살려 2009년 노인요양시설에서 요양사로 활동하면서부터였다. 장 씨는 “남을 돕는 일을 하면서 내가 놓인 상황을 인정하고 현재 위치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길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며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장 씨는 아예 노인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지난해부터 서울동부병원의 요양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또 이발사 자격증도 취득해 주말에는 한 달에 두 번씩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이발봉사까지 하고 있다. 봉사활동으로 직장에 다닐 때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는 “주변에서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한다”면서 “쉴 틈 없이 빡빡한 일정이지만 생활의 활기를 되찾으니 몸도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씨는 은퇴한 뒤 일거리를 찾고 있거나 퇴직을 앞둔 예비 은퇴자들에게 “욕심을 조금 낮추면 은퇴 후의 삶이 훨씬 풍요로워진다”고 조언했다. 그는 “줄어든 수입만큼 지출을 줄이고 눈높이를 낮추면 퇴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지 않다”며 “특히 은퇴자의 경험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 정서 안정과 건강 유지에 도움

최근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내놓은 ‘2011년 사회복지 자원봉사 통계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8810개 자원봉사관리센터에 등록한 자원봉사자는 492만859명에 이른다. 2006년 자원봉사자 수가 128만7235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3.8배 수준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50대 이상은 21만4292명으로 전체 자원봉사자 수의 4.4%에 그쳤다. 특히 60대 이상 자원봉사자 수는 7만5889명으로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적었다. 일본의 60대 이상 고령층의 자원봉사 참여율이 28.5%, 미국(65세 이상)이 14.3%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국내 은퇴자들의 자원봉사 참여가 낮은 것은 선진국보다 연금제도 등 사회복지제도가 덜 발달돼 있어 노후준비가 부족한 탓이 크다.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확보한 은퇴자라면 장 씨처럼 자원봉사나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찾는 것이 성공적인 노후생활을 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퇴직 후 사회와 단절됐다는 자괴감으로 정서적 불안을 겪는 은퇴자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만큼 사회봉사형 일자리나 봉사활동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원봉사는 은퇴 뒤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대가 65세 이상 은퇴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은퇴 뒤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 사망 위험을 크게 낮춘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성공적인 자원봉사를 위해서는 사회생활을 통해 쌓아온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재능 기부’에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한주형 퓨처모자이크연구소장은 “선진국에서는 자원봉사나 재능 기부가 사회공헌형 일자리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며 “경험이나 관심을 살려 적극적으로 자원봉사에 나서면 은퇴자들이 경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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