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이후 10만여명 과거 식민지 남미로 ‘일자리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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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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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정복자, 그 후예들의 굴욕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물류회사 관리자로 일했던 킴 비달 씨(45)는 재정위기가 심화되면서 월급이 3000유로(약 433만 원)에서 970유로로 삭감됐다. 해고만 간신히 피한 수준이었다. 연일 추가근무에 시달리던 그는 실직한 뒤 아르헨티나로 떠나 새 직장을 얻은 여자친구 에리카 씨의 권유를 받고 미련 없이 짐을 쌌다.

비달 씨는 “스페인에서 1.5유로(약 2170원)인 맥주 한 병이 5유로(7200원)나 되고 물가 상승률이 연 25∼30%나 되지만 당분간 (스페인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남반구의 파리로 불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좋다”고 말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과거 중남미 국가를 다스렸던 ‘정복자’(conquistadores)의 후예들이 일자리를 찾아 옛 식민지 국가로 몰려가고 있다. 특히 기록적인 실업률에 시달리는 스페인의 ‘일자리 엑소더스’가 두드러진다.

7일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중남미 국가로 떠난 스페인 국민은 6만7000여 명이다. 이 중 2만5000명은 멕시코에, 2만 명은 베네수엘라에 정착했다.

국제이주기구(IOM)가 6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8∼2009년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 10만7000여 명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으로 이주했다. 국가별로는 스페인 4만7701명, 독일 2만926명, 네덜란드 1만7168명, 이탈리아 1만5701명 등이다.

2010년 현재 중남미에서 활동하는 유럽인 근로자의 연간 자국 송금액은 45억7000만 달러(약 5조750억 원)에 달했다. 보고서는 “일자리를 찾으려는 미혼 청년층과 사회학과 기계공학 전공자가 가장 많다”고 밝혔다.

IOM은 특히 브라질이 주요 이주지라고 평가했다. 브라질 내 유럽인 근로자의 연간 자국 송금액이 10억 달러를 넘었다는 것. 이는 유럽에 거주하는 브라질 근로자의 연간 자국 송금액 13억 달러에 근접한다.

유럽인의 브라질 이주는 1960년 이래 처음 증가세로 돌아섰다. 브라질 거주 유럽인은 1960년 94만9000명에서 2000년 33만8000명으로 줄었으나 2010년엔 37만4000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이 가운데 80%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인이다.

특히 과거 브라질을 식민지로 두었던 포르투갈에서 지난해 2년 기한의 브라질 취업비자를 취득한 사람은 2010년의 3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브라질의 외국인 근로자가 33%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포르투갈 출신 노동자들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2010년 브라질 내 포르투갈 출신 근로자 수는 8위에 머물렀다.

IOM은 “브라질의 경제적 성공과 2014년 월드컵 축구대회,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최가 건설·건축 등 전문직 유럽인 근로자의 이주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멕시코 베네수엘라는 스페인어,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해 언어나 문화적인 이질감이 적은 것도 대규모 이주의 중요한 요인이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스페인#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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