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력, 韓 시가총액 10년새 375% 뛸때 日 14%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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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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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국 17개 경제지표 분석


“한국 기업들은 속도 경영과 빠른 기술 혁신으로 변화에 둔감해진 일본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다만 일본경제의 저력을 절대 얕봐선 안 된다.”

동아일보의 한일 경제력 비교 설문조사에 참여한 국내 일본경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이런 평가를 내렸다.

최근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제조업 분야 한국 대표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일본 기업들을 넘어서는 등 한국경제의 부분적인 ‘일본 추월’은 다양한 지표로 확인된다. 하지만 총체적인 실력으로 ‘일본 추월’을 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한국 기업 속도 경영으로 ‘일본 추월’

동아일보 취재팀이 △경제 규모 △기업 경쟁력 △대외 경쟁력 △성장잠재력 △경제 안정성 등 5개 분야에서 한일 양국의 17개 경제지표를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 사이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 차는 크게 좁혀졌다.

특히 기업 경쟁력에서 한국의 빠른 성장이 두드러졌다. 한국 상장기업들의 가치를 보여 주는 시가총액은 2002년 12월 말 2157억 달러(약 241조 원)에서 올해 6월 말 현재 1조246억 달러로 375%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일본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은 2조9693억 달러에서 3조3848억 달러로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매출액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500대 기업’에 포함되는 한국 기업의 수도 2002년 12개에서 올해 13개로 소폭 늘어난 데 비해 일본은 같은 기간 88개에서 68개로 크게 줄었다.

전문가들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일본 기업들보다 선전하는 원인으로 ‘속도 경영’과 ‘위기 대응력’을 꼽았다. 삼성전자와 소니의 시가총액은 2002년 약 460억 달러로 비슷했지만 스마트폰 시장 변화 등에 빠르게 대처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올해 9월 기준 약 1800억 달러로 소니(123억 달러)의 15배에 육박하고 있다. 2002년 도요타 시가총액의 20분의 1 수준이던 현대자동차는 올 들어 도요타의 3분의 1 수준으로까지 따라잡았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글로벌경제팀장은 “한국 기업들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기업 체질이 강화됐다”며 “기술 혁신에 대한 과감한 투자, 위험을 무릅쓰는 공격적 투자가 일본 기업에 앞서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 “수출입 규모도 조만간 일본 추월”


수출 대기업들의 선전(善戰) 속에 한일 양국의 수출액 차가 10년 사이 크게 좁혀지는 등 대외 경쟁력 면에서도 일본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한국의 수출액은 2002년 1624억 달러로 일본(4162억 달러)의 절반에 못 미쳤지만 올 7월까지는 한국 3198억 달러, 일본 4753억 달러로 격차가 좁혀졌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해마다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 역시 한국은 2007년 29위로 일본(24위)에 뒤졌지만 올해는 22위로 일본(27위)을 앞질렀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은 성공적으로 경제체제를 대외 개방 구조로 전환하면서 글로벌화에서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며 “수출입 규모에서도 조만간 일본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지표 외에 경제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교육 경쟁력에서도 한국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발표하는 ‘세계 200대 대학’에 한국은 올해 3개 대학이 선정돼 5년 전인 2007년(2개)보다 늘었지만 일본은 11개 대학에서 5개 대학으로 줄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9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도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읽기와 수학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한국 사회 전체의 상승 지향성과 활력, 혁신 지향적 태도가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2.4배 인구를 보유한 일본에 비해 내수시장이 좁다는 건 한국경제의 약점이다. 하지만 통일이 이뤄지면 이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기동 한일경상학회 회장(계명대 교수)은 “북한과 한국의 경제성장 단계의 차이가 커 통일이 경제에 부정적인 면이 많겠지만 시장 규모의 확대라는 점에서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점도 크다”고 말했다.

○ 기술 격차, 복지 지출 해결해야

일본 추월을 논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제조업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 및 소재를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수입하는 한국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대(對)일본 교역에서 2730억 달러의 누적적자를 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일본 경제계는 한국 기업들의 수출 호조가 기술력보다 저평가된 원화의 덕이라고 본다”며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을 넘어서겠다고 떠들면 국제사회에서 비웃음만 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일본팀장은 “예전에 한국 기업은 일본 제품을 모방하며 쉽게 성장했지만 이제 일본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한국 기업들은 이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혁신 제품을 만드는 기술력과 창조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높은 대외 의존도와 환율 변동성 역시 한국 경제가 일본을 추월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환율 변동성 때문에 세계 경제가 출렁일 때마다 큰 충격을 받는다”며 “일본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대외 의존도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위기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가파른 복지 지출 증가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 ‘경제민주화’와 맞물린 기업 규제 강화, 과도한 가계부채 등은 한국경제가 20년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밟게 하는 위험 요인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경제의 추락은 부동산 경기 하락과 규제 확대, 복지 지출 증가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유발됐다”며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한국#일본#경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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