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매뉴얼도 의심해야 블랙아웃 막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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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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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5정전 1년 전력거래소

12일 한국전력거래소 ‘워룸(작전실)’에서 남호기 이사장(왼쪽)이 ‘750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750회의는 매일 오전 7시 50분에 열리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2일 한국전력거래소 ‘워룸(작전실)’에서 남호기 이사장(왼쪽)이 ‘750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750회의는 매일 오전 7시 50분에 열리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해까지 쓰고 있던 전력수요관리 매뉴얼에는 ‘비상시 전압을 떨어뜨리면 전력사용량을 150만 kW 줄일 수 있다’고 돼 있었지만 실험해 봤더니 아니더군요. 아낄 수 있는 전력은 70만 kW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에서 만난 남호기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당연하게 여겼던 매뉴얼들이 실제와 부합하는지 의심이 들어 하나하나 확인했다”고 말했다.

전력거래소는 한국의 전력 수급(需給)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전국 발전소와 전력망 가동계획을 세우고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이상 징후에 대응해 국민이 걱정 없이 전기를 쓸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지난해 ‘9·15 정전사태’ 발생 두 달 뒤 취임한 남 이사장은 먼저 전력수요관리 매뉴얼의 잘못된 부분을 일일이 확인해 바로잡았다.

매뉴얼과 실제 실험 결과가 달랐던 것은 최신 가전제품들이 전압이 떨어지는 걸 감지하고 전기를 더 많이 써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춘 탓이다. 철마다 기능이 다른 가전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전력거래소는 같은 실험을 되풀이할 계획이다.

9·15 사태 당시 전력거래소 이사장과 지식경제부 장관이 비상 순환단전을 실시한 사실을 뒤늦게 보고받은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됐다. 남 이사장은 예비전력이 모자랄 조짐이 보이면 아예 비상상황실에 자리를 잡는다. 올여름에는 한 달 이상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는 “‘9·15 사태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이 ‘블랙아웃’(대규모 동시정전)이라는 말을 잊고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상청 근무 경력 30년 이상인 기상전문가 두 명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것도 정전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다. 9·15 사태 때 기상청은 최고온도가 33도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보했지만 전력거래소는 이를 몰랐다. 당연히 폭증하는 전기 수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김남길 씨도 남 이사장이 모셔온 인재다. 그는 11일 오전 7시 50분에 시작한 아침 회의에서 “아직 이름이 붙지 않았지만 2개의 태풍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나는 일본 규슈 지방에 상륙한 뒤 우리나라 동해상을 지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남 이사장은 “태풍이 오기 전에 대책을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남 이사장은 전력 부족이 예상되면 방송사에 협조를 요청해 전날 TV의 일기예보 때 이런 사실을 미리 알리게 했다. 또 직원들을 국제전력계통운영 자격시험에 단체로 응시하게 했다. 일부의 반발도 있었지만 그는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국민의 협조를 얻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몰아붙였다.

남 이사장은 “아직 한국의 전력 수요관리정책은 기업의 협조에 기대는 초보적인 수준이며 전기 과소비 행태도 바뀌지 않았다”며 “전기요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전력이 전력거래소를 상대로 ‘전력구매대금 책정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4조 원대 소송에 대해서는 “한전 실무자들이 평정심을 잃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9·15 사태#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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