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특허 승소율 26%… 제품 개발때부터 전략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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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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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허전쟁 가열… 우리의 대비책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특허권리 인식이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 아니었나.’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에서 미국 법원의 배심원단이 애플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같은 반성이 나오고 있다. 미국 배심원단의 평결에 대해 ‘자국 기업 감싸기’라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특허 전쟁을 벌이는 동안 한국 기업과 정부는 방심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 특허 소송 환경, 나라마다 다르지만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1부는 아이폰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나 ‘밀어서 화면 잠금을 해제하는 기술’과 같은 상대적으로 모호한 디자인과 활용 방식에 지식재산권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미국 북부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의 판단은 이와 전혀 달랐다.

지식재산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특허 소송에서는 소송이 진행되는 나라의 산업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는 사례가 왕왕 있다고 말한다. 한국처럼 제조업이 강한 나라에서는 특허권자를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호하는 반면, 미국처럼 산업 고도화가 많이 진행된 나라에서는 무형 자산을 강하게 보호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7∼2004년 나라별 특허 승소율을 보면 미국의 특허권자 보호율, 즉 특허 승소율은 59%였으나 한국(26%)과 일본(20%)은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스위스에서의 특허 승소율은 85%, 중국은 33%였다.

특히 국내 특허 소송에 대해서는 특허 침해가 인정되더라도 그에 따른 손해배상액이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으로서는 특허 소송에 따른 리스크가 그만큼 작게 느껴지고, 특허 소송 자체를 별것 아닌 걸로 여기게 되기 쉬운 환경이라는 얘기다.

한 특허 전문 변호사는 “외국 기업에 비해 국내 기업들이 지식재산권을 가볍게 봤던 게 사실”이라며 “국내에서 제대로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에 대해 ‘단련’을 못 받으면 외국에 나가 얻어맞기 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세계에서 활동하려면 대비책 세워야

문제는 특허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한국 기업도 세계에 제품을 내다 팔려면 해당 국가의 특허 소송 환경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까지 미국 법원에서 발생한 한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관련 분쟁은 모두 139건이다.

전문가들은 특허 소송에 잘못 대처해 내리막길을 걷게 된 코닥과 같은 사례를 국내 기업들이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코닥은 1980년대 후반 폴라로이드와의 특허 소송에서 배상금 8억73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으며, 제품 회수 및 공장 폐쇄 등에 든 비용까지 합하면 특허 문제 때문에 모두 30억 달러 이상을 손해 본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는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기업이라면 처음부터 지식재산권을 염두에 두고 직제를 개편하고 경영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지식재산권 관련 팀을 하부 지원조직으로 둘 게 아니라 임원급 전문가가 최고 의사결정 단계에 참여하게 해 제품 개발 및 기획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될 사항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 전체로는 이를 위해 지식재산권 전문가를 양성하고 특허 소송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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