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銀 이름 걸맞은 美지점 부활… 그 머나먼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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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금융, 외환은행측의 리뱅킹 구상에 제동

외환은행은 은행 이름에 걸맞지 않게 미국에 제대로 된 지점이 하나도 없다. 현지 법인이 3개 있지만 수신 기능이 없다. 은행 지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외환 로스앤젤레스(LA) 파이낸셜’과 ‘외환 뉴욕 파이낸셜’은 대출 전문회사에 불과하다. ‘미주 외환송금 서비스’는 교민과 유학생, 주재원들을 상대로 송금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원래 외환은행이 미국에 지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국내 시중은행 중 가장 강력한 영업망을 미국에 구축했다. 뉴욕, 브로드웨이, LA, 시카고, 시애틀 등 5개 지점에다 퍼시픽유니언뱅크(PUB)라는 현지 법인까지 있었다. PUB는 교민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면서 매년 1000만 달러(약 100억 원) 이상의 순익을 내는 알짜 법인이었다.

하지만 2003년 외환은행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인수된 후 미국 영업망은 붕괴됐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미국 내 5개 지점을 모두 폐쇄하면서 영업권도 미 금융당국에 반납했고 PUB 지분은 매각했다. 외환은행이 30년 이상 공들여 구축한 미국 네트워크가 산산조각 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달이면 충분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미국 영업망을 해체한 것은 미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미 금융감독 규정에 따르면 미국 안에서 영업하는 은행 점포나 현지 법인의 지분을 25% 이상 소유한 주주도 감독을 받는다. 외환은행의 최대주주인 론스타도 감독 대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몇몇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은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게 되면 자금 출처가 드러나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올해 초 론스타의 수중에서 벗어난 외환은행이 미국 지점 부활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록 하나금융지주의 우산 아래 들어갔지만 외환은행 직원들은 ‘차시환혼(借屍還魂)’의 각오로 외환은행의 옛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다. 차시환혼은 외환은행에서 24년 넘게 일한 박제용 전 수석부행장이 2월 말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중국 병법서인 ‘36계’ 중 14계로 ‘죽은 사람 영혼이 다른 사람의 시체를 빌려 부활한다’는 뜻이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빌려 원하는 것을 이뤄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김보헌 외환은행 노동조합 전문위원은 “미국 지점은 국내 금융회사 중에서 해외 진출의 선두에 섰던 외환은행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미국 지점 부활은 외환은행 직원들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정서와 의지를 감안해 그동안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했던 KB금융지주나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모두 미국 지점 부활을 인수 조건에 포함시켰다.

윤용로 외환은행장 역시 2월 취임 후 미국 시장 재진출을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다. 윤 행장은 6월 말 미국 출장길에 올라 미 금융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리뱅킹’ 작업을 직접 챙겨왔다. 리뱅킹이란 금융당국에 반납한 지역 영업권(여·수신 권한)을 되찾아 다시 지점을 개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윤 행장은 미국 지점 부활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 현지 은행을 인수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 위해서는 미국 현지 은행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외환은행 직원들의 의지와 윤 행장의 구상은 새 주인인 하나금융지주의 전략으로 틀어졌다. 하나금융이 7월 말 미국계 교포은행인 BNB은행의 지주회사 BNB파이낸셜 인수에 성공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BNB은행은 미국 전역에서 지점을 개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갖고 있다. 하나금융 안에서는 “미국에서 지점을 개설할 수 있는 은행을 인수한 상황에서 외환은행이 리뱅킹을 추진하는 것은 업무 중복”이라는 의견이 흘러나왔다.

결국 하나금융은 최근 리뱅킹과 미국 은행 인수 추진을 일단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외환은행 측은 20일 금융감독원에 이런 사정을 설명했다. 미국 시장 재진출이라는 외환은행 직원들의 염원도 일단은 무산됐다는 뜻이다.

이 사건은 하나금융이 추진해 온 외환은행의 ‘화학적 결합’을 방해하는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외환은행 직원들의 불만에 불을 지르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외환은행 노조는 “아직 은행 측에서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게 없다”면서도 “만약 (무산이) 사실이라면 독립경영을 보장하기로 한 인수 당시의 합의를 위반한 것이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외환은행#윤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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