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외풍에 날아간 KB금융 ‘메가뱅크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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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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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경제부 기자
김상운 경제부 기자
“순수한 경제논리로만 봤을 때 대부분의 이사는 우리금융지주 인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KB금융지주 긴급 이사 간담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24일 한 사외이사는 KB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해야 하는 이유를 경제논리를 들어 기자에게 설명했다. 또 다른 사외이사는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적 규모의 금융회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며 “우리금융을 인수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곳은 오직 KB금융밖에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25일 간담회에서 KB금융 이사들은 불과 25분 남짓한 시간에 우리금융 매각입찰에 불참한다는 방침을 확정지었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마지막으로 이사들을 설득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일각의 추측과는 달리 격론은 전혀 없었다. 어 회장은 간담회 인사말과 마무리 발언을 통해 ‘메가뱅크’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사외이사들이 품었던 ‘인수 당위성’이 현실화되지 못한 것은 거대한 압력이 간담회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이날 KB금융 이사회가 열리자마자 노동조합원들이 본점 1층 로비를 가득 채웠다. 이들은 취재기자들 이상으로 회의장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며 ‘인수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여기에 더해 이사들을 꼼짝 못하게 한 것은 “이번 정권에서 매각은 안 된다”는 여야 정치권의 압박이었다.

사실 경제논리로 따졌을 때 우리금융은 진작 민영화됐어야 했다. 2001년 12조8000억 원의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돼 무려 11년이 흘렀지만 두 번의 매각 시도가 연이어 실패하면서 아직까지 7조2000억 원을 회수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씨티그룹에 쏟아 부은 공적자금 450억 달러를 2년 만에 전액 환수한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국민 혈세로 조달하는 공적자금이 10년 넘게 특정 기업에 묶여 있는 것은 엄청난 낭비이기도 하다. 우리금융 매각 지연으로 공적자금 이자비용만 매년 2800억 원이 새나가고 있다. 공적자금을 조달하려고 발행한 예금보험공사 채권의 이자 지급액으로 산정한 게 이 정도에 이른다. 민영화가 늦어지면서 우리금융은 증시에서 대표적인 저평가 주식으로 밀려났다.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할 우리금융 매각에 정치권이 ‘구두 개입’을 하고 금융계는 눈치 보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금융이 언제 새 주인을 찾을지 기약할 수 없다. KB금융의 한 사외이사가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한숨 섞어 한 말이 이번으로 마지막이길 기대한다.

김상운 경제부 기자 sukim@donga.com
#경제 카페#메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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